성령 의 은사에 대하여 질문 입니다.
마당쇠
2005-09-06 오전 11:58
진리를 사모하는 형제님께
먼저 타작마당에 들어오신 형제님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진리의 영께서 형제님을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시는 역사는 성령의 은사들을 통하여 성령의 열매를 이루시는 일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일곱 가지로 나타납니다. 사도의 은사, 선지자의 은사, 교사의 은사, 능력의 은사, 병 고침의 은사, 방언의 은사. 방언 통역의 은사로 나타납니다.
기록되기를『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고전 12:29-30) 라고 증거 된바와 같은 것입니다.
이 일곱 가지의 은사는 하나님의 보내신 일곱 영으로 나타나집니다. 기록되기를『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계 5:6)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몸 된 교회에는 이 일곱 영의 역사가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으로 말하는 초대교회에서는 이 일곱 영의 역사가 다 있었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란 육신에 속하지 않고 영에 속한 신령한 무리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교회에 대한 명확한 증거에『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32) 라는 기록과 같이 이러한 거룩한 무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일곱 영의 역사를 성경은 성령의 은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성령의 은사만 있고 성령의 열매가 없다면 이는 교회의 촛대를 옮기게 되는 슬픈 결과가 있을 뿐입니다. 기록된바『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요 15:2) 라고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의 은사와는 또 다릅니다. 기록되기를『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2-24)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는 아직 육이 있는 어린아이의 교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은사이시고 어린아이에서 벗어나 장성한 자가 되면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게 되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는 교회의 일꾼 된 사도 바울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그냥 뿌리와 싹과 줄기와 가지와 잎과 꽃과 이삭만 있고 이삭 속에 충실한 알곡이 없다면 이는 표면적 교회는 될지언정 이면적 교회는 아닙니다. 오직 이면적 교회는 사랑입니다.
교회에서 성령의 은사가 반드시 필요하지마는 그 일곱의 은사들로써 성령의 열매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교회는 반드시 뽑아 버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을 교회로 다시 심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령의 은사만 있는 교회는 좋아 하나 성령의 열매가 있는 교회는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께서 성령의 은사로 사역하실 때는 많은 사람들이 따르며 심지어 눈이라도 빼어주려 하였으나 성령의 열매로 사역하실 마지막 때에는 아시아의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울을 버렸습니다. 이는 열매가 익을 때는 줄기가 시드는 것과 같이 성령의 열매가 익을 때는 성령의 은사가 시들기 때문입니다.
증거 되기를『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딤전 5:23) 하셨고 또한『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렀고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노니』(딤후 4:20) 라고 하신대로 성령의 은사의 때와 성령의 열매의 때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의 은사가 거하는 곳이 아니고 성령의 열매만 거하는 곳입니다.
이러므로『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 8:19-21) 하신대로 성령의 열매가 있는 영광스런 교회가 나타나지기를 타작마당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말째인 마당쇠의 부족한 답보다도 하나님의 사정을 통달하시는 진리의 영께서 형제님께 답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먼저 타작마당에 들어오신 형제님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진리의 영께서 형제님을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시는 역사는 성령의 은사들을 통하여 성령의 열매를 이루시는 일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일곱 가지로 나타납니다. 사도의 은사, 선지자의 은사, 교사의 은사, 능력의 은사, 병 고침의 은사, 방언의 은사. 방언 통역의 은사로 나타납니다.
기록되기를『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고전 12:29-30) 라고 증거 된바와 같은 것입니다.
이 일곱 가지의 은사는 하나님의 보내신 일곱 영으로 나타나집니다. 기록되기를『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계 5:6)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몸 된 교회에는 이 일곱 영의 역사가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으로 말하는 초대교회에서는 이 일곱 영의 역사가 다 있었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란 육신에 속하지 않고 영에 속한 신령한 무리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교회에 대한 명확한 증거에『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32) 라는 기록과 같이 이러한 거룩한 무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일곱 영의 역사를 성경은 성령의 은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성령의 은사만 있고 성령의 열매가 없다면 이는 교회의 촛대를 옮기게 되는 슬픈 결과가 있을 뿐입니다. 기록된바『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요 15:2) 라고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의 은사와는 또 다릅니다. 기록되기를『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2-24)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는 아직 육이 있는 어린아이의 교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은사이시고 어린아이에서 벗어나 장성한 자가 되면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게 되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는 교회의 일꾼 된 사도 바울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그냥 뿌리와 싹과 줄기와 가지와 잎과 꽃과 이삭만 있고 이삭 속에 충실한 알곡이 없다면 이는 표면적 교회는 될지언정 이면적 교회는 아닙니다. 오직 이면적 교회는 사랑입니다.
교회에서 성령의 은사가 반드시 필요하지마는 그 일곱의 은사들로써 성령의 열매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교회는 반드시 뽑아 버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을 교회로 다시 심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령의 은사만 있는 교회는 좋아 하나 성령의 열매가 있는 교회는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께서 성령의 은사로 사역하실 때는 많은 사람들이 따르며 심지어 눈이라도 빼어주려 하였으나 성령의 열매로 사역하실 마지막 때에는 아시아의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울을 버렸습니다. 이는 열매가 익을 때는 줄기가 시드는 것과 같이 성령의 열매가 익을 때는 성령의 은사가 시들기 때문입니다.
증거 되기를『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딤전 5:23) 하셨고 또한『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렀고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노니』(딤후 4:20) 라고 하신대로 성령의 은사의 때와 성령의 열매의 때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의 은사가 거하는 곳이 아니고 성령의 열매만 거하는 곳입니다.
이러므로『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 8:19-21) 하신대로 성령의 열매가 있는 영광스런 교회가 나타나지기를 타작마당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말째인 마당쇠의 부족한 답보다도 하나님의 사정을 통달하시는 진리의 영께서 형제님께 답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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