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작마당

생각없는 생각
화목제물 2005-09-03 오후 3:15




생각없는 생각 김흥호, 솔, 1999. 6. 28)



「사람은 어제를 사는 것도 아니고

오늘을 사는 것도 아니고 내일을 사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하루를 산다. 아침을 살고 대낮을 살고 저녁을 살고 한밤을 산다.

어제를 그리며 사는 것도 아니고 내일을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니고

오늘에 쫓기며 사는 것도 아니다. 하루를 사는 것뿐이다.」




<깨끗한 마음> ( p.5)

「맑은 호수에 흰구름이 비치듯이 사람의 마음이 한없이 깨끗해지면

형이상의 세계를 볼 수가 있다. 이런 관조없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알 수 없을 것이다.」「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맑게 하는 길은 생각하는 길밖에 없다.

내가 생각할 때 나는 있기 마련이다.」




<제소리> (pp.13∼14)

「어머니가 낳은 나는 내가 아니다. 내가 낳은 내가 나다. 무한히 펼쳐진 이 세상이 여기가 아니다. 내가 선 땅이 여기다. 시간도 흘러가는 것은

내 시간이 아니다. 내가 깬 순간이 내 시간이다.」「인간은 나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그러나 새로 낳은 나는 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죽지 않는 나를 가질 때 언제나 죽을 수 있고,

없어지지 않는 나를 가질 때 어디나 갈 수 있고, 죽지 않는 나를 가질 때

누구나 만날 수 있다.」「나는 영원하고 무한하고 신성하다. 세상에 나를 이길 자가 없고

나를 누를 자가 없고 나를 무시할 자가 없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존경하고

나를 두려워하는 자만이 참 나를 살 수가 있다. 나는 나다. 언제나 나요, 어디나 나요,

누구나 나다. 나를 알고 나를 찾고 내가 되어 나를 사는 자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불> ( p.14)

「사람은 한번쯤 자기 육신에게 마치 그것이 돌이나 나무인 것처럼

'나는 정신이요, 너는 물질이다'하고 외치는 때가 있어야 한다.

인간은 정신이다. 정신이란 나다. 나란 하나의 관계의 존재이다. 이러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밤낮으로 노력할 때에만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이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 계속 애쓰는 정신, 그것이 깬 정신이다.

깬 정신, 그것이 나다. 이 관계는 흔히 약속이나 계약으로 표시되기 때문에

약속의 이행과 계약의 실천, 이것이 관계의 세계이다.

행의 세계, 이것이 나의 세계요, 정신의 세계이다.

칸트는 이러한 나를 '실천이성'이라고 하지만 키에르케고르는 '주체성'이라고 한다.

주체성은 행에서 이루어지고 정신은 약속을 지키는 데서 더욱 깨어난다.

깬 정신, 그것이 나다.」




<감> (pp.16∼17)

「동양사람들은 다 익은 사람을 仁이라고 한다. 자기 속안(德)을 가진 사람이요,

완성되어 있는 사람, 성숙해 익은 사람, 된 사람, 다한 사람, 개성을 가진 사람,

있는 곳이 그대로 참인 사람, 언제나 한가롭고(心無事)어떤 일에도 정성을 쏟을 수 있는 사람(事無心), 동양에서는 이런 사람을 사람이라고 한다.

다 준비되어 있는 사람(平常心),더 준비할 것이 없는 사람(無爲),

꼭지만 틀면 물이 쏟아져 나오듯(命)말이 쏟아져 나오고(道)사랑이 쏟아져 나오는 사람, 그런 사람을 仁이라고 한다. 仁은 된 사람이다.

어디에서나 통하는 조화된 인간, 자기를 잊은 사람, 자기가 없는 사람, 그것이 仁이다.」




<청천백일> (p.18)

「율곡은 말이 많고 걱정이 많은 것처럼 사람에게 해로운 것이 없다고 한다.

말이 많다는 것은 생각이 부족한 탓이요, 걱정이 많다는 것은 믿음이 부족한 탓이다.

생각의 부족은 철학의 부족이요, 믿음의 부족은 종교의 부족이다.

생각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지혜가 빛나고, 믿음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사랑이 넘친다. 지혜의 빛과 사랑의 힘이 넘치는 곳, 그곳이 하늘나라다.」




<생각> (pp.23∼24)

「데카르트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두 마디의 좌우명이 있었다.

'잘 숨는 사람만이 잘 사는 사람'이라는 오비디우스의 말과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면서도 자기 자신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람은

죽음에 처하여 죽음을 무서워한다'는 세네카의 말이다.

인생에서 가장 높은 삶을 산 사람은 가장 깊이 숨어서 살아간 사람이다.

깊이 숨지 않고서야 어떻게 깊은 생각에 잠길 수 있을 것인가.

남에게 인정을 받을지라도 자기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자기에게 인정을 받는 것만이 죽음을 초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생사를 초월한 사람만이 능히 깊이 생각하고 높이 살아갈 수가 있다.

초월한 사람에게는 생각과 존재가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있다'」




<행복> (p.44)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자기의 한계를 아는 지식이다. 이것을 지혜라고 한다.

이 지혜로 자신의 한계를 알고 그 한계 안에서 만족하고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행복은 희랍어로 신과 함께 산다는 말이다.

자족한 사람이 신에 가까운 사람이요, 행복한 사람이다.」




<용기> (pp.44∼45)

「인간은 현재 있는 상태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

인간은 현재 있는 존재에 대하여 가치를 느낄 수가 없다. 인간은 이 현재를 넘어서 아직 있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데서만 가치를 느낀다.

인간이 스스로 보람을 느끼고 자유를 실감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가능성의 허무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사물은 그 자체의 존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존재가 될 수는 없다.

인간은 자기의 無를 의식하고 자각하여 그것을 살아가야 한다.

인간은 하나의 길이요 길 위에 있다. 언제나 미완성이요 결여체요 허공이요 無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자유가 있다. 인간의 자유는 無의 자유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는 사랑하지만 無는 싫어한다.

無는 언제나 불안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가끔 자유를 내버리고 영원히 안정된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기성가치에 굴종하기도 하고 거대한 기구 속에 자기를 내맡기려고도 한다.

그러나 無의 자유를 자각한 인간은 도저히 자유를 버릴 수가 없어

언제나 쓸쓸하게 산길을 걸어간다. 험하고 높고 좁은 길이기에 자유에는

언제나 저항과 고독과 박해와 고난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는 길은 이 길밖에 없기에 인간은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이 길을 걸어왔다.

자유는 계속 불안과 공포에 위협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이것을 극복하고 계속 전진할 것이다. 행복은 자유에서 오고 자유는 용기에서 온다고 폐리클레스가 말했다지만, 행복은 안 와도 좋으니

용기만이라도 끊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용기만이 계속 몰아치는 존재의 유혹을 물리칠 수가 있다.」




<이방인> (pp.49∼50)

「자기 생명보다도 자기의 진실 때문에 어떤 관념에도 붙잡힘 없이 다만 자기의 감각에만 충실하려는 젊은 뫼르소는 처음부터 자기에게 부당하게

뒤집어 씌워지는 사형선고에 대해서도 저항할 생각은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뫼르소에게는 자연과의 관계가 전부였다.

자연과의 일치가 행복이었고 자연과의 불일치가 불행이었다.

…자기의 죽음을 앞에 놓고도 아무런 공포도 없었다.

…그에게 행복은 다만 하루라도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추억속에 사는 하루는 천년만년의 인생보다도 더 값지다.

아무도 깨뜨릴 수 없는 추억의 세계는 인생에 허락된 영원한 성역이다.」




<산과 물> (pp.56∼57)

「율곡은 열아홉 살에 금강산에 들어가면서 내가 산에 들어감은 내 속에서 산을 찾기 위함이요, 내가 물을 따라감은 내 속에서 물을 만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속에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산을 가지고 있고,

인간은 누구나 자기 속에 지식의 위대성이라는 바다를 가지고 있다.

내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발견했을 때 인간은 산을 즐길 수 있고,

내 속에서 지식의 위대성을 발견했을 때 인간은 물을 좋아할 수 있다.

어진 사람이 산을 즐김은 산이 되어 즐기는 것이요,

아는 사람이 물을 좋아함은 물이 되어 즐기는 것이리라.

산이 산이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요, 물이 물이 되기란 간단한 일이 아니다.

靑原대사가 말했다. '내가 삼십년 전에 세상을 모르고 살 때에는

산을 보아도 그것이 산이요, 물을 보아도 그것이 물이더니

내가 세상을 알고 보니 산은 이미 산이 아니요, 물은 이미 물이 아니더라.

그런데 지금 다시 세상을 떠나 산과 물을 바라보니

산은 그대로 산이요, 물은 그대로 물이더라.'」




<하늘과 땅> (pp.59∼60)

「세상에서 건강처럼 좋은 것은 없다.

건강을 가지는 것은 하늘과 땅을 가지는 것이다.…

마음만 바로 잡히면 몸은 언제나 바로 잡힌다. 현-존재 없이 실존은 불가능하다.…

몸은 개성적인 것이다. 건강은 개성적인 것이다.

자기의 개성을 발견할 때 건강은 이루어진다. 자기의 길을 쫓아갈 때 사람은 몸의 자유를 얻는다. 몸의 자유는 마음의 자유에서 온다.

자유가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건강이다.

건강은 자기가 자기를 자각할 때에만 가능하다.

건강은 인격의 표현이다. 神에 통하지 않으면 身을 보존할 수 없다.

신앙은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대학인> (pp.91∼92)

「세상에는 먹는 맛도 있고 노는 맛도 있고 아는 맛도 있다.

먹는 맛보다는 노는 맛이 좋고, 노는 맛 보다는 아는 맛이 좋다.

먹는 맛은 식물도 가질 수 있는 맛이요, 노는 맛은 동물도 가질 수 있는 맛이다.

그러나 아는 맛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맛이다.

사람이 잘났다면 아는 맛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잘난 점이고,

사람이 행복하다면 아는 맛을 가질 수 있기에 행복한 것이다.

…인간이 앎을 개척하지 못하면 인간으로 살았다 할 수가 없다.

먹는 재미에 사는 사람은 식물의 삶을 사는 사람이요,

노는 맛에 사는 사람은 동물의 삶을 사는 것에 불과하다.

아는 맛에 사는 사람만이 사람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정말 앎의 기쁨을 가진 사람이란 음식에 맛을 붙이듯이 진리에 맛을 붙인 사람이다.

대학이 진정한 대학이라면 앎에 맛붙인 사람들이 모인 곳이요,

진리를 위해서 진리를 찾는 사람이 대학인이다.

대학은 먹기 위해 있는 것도, 놀기 위해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학은 알기 위해서 있다. 대학은 취직을 위해서 있는 것도,

출세를 위해서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학은 진리를 찾는 곳이다.

진리는 진리 속에 맛을 가지고 있다. …인생은 수단이 아니다.

인생자체가 목적이다. 무엇을 위하여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공부가 좋아서 공부하는 것 뿐이다.

진리를 위하여 진리를 찾는 사람, 그 사람이 대학인이다.」




<가난> (pp.105∼106)

「허무 속의 즐거움만이 참 자유임을 안다.

…자유의 근거는 허무요, 자유의 기분은 불안이다.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은 움직인다는 말이다.

만일 부자가 되어 움직이지 않게 된다면 부는 죽음이며 가난이야말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난을 집어 치우고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가난을 사랑할 수 있는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유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고 무를 사랑하고 불안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가난을 사랑하고 하늘나라를 사랑하는

철든 사람이다. 철든 사람은 언제나 변화를 사랑한다.

언제나 가난과 비어있는 사람에게는 만물의 변화가 그치지 않는다.」




<직업> (pp.110∼111)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사회전체에 이바지하려면 직업을 통해서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과정이요, 윤리적인 길이다.

일이 길이 된다는 말은 일이 하나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으로 승화된다는 것이다. 일 속에서 나는 평안을 느끼고

일을 통해서 나는 존엄을 느끼고 일을 함으로써 나는 보람을 느낀다.

일 속에 기쁨이 있고 일 속에 행복이 있고일 속에 만족이 있다.

이런 세계가 도의 세계이다.」




<운명> (pp.111∼112)

「사람은 죽어도 알아야 할 것이 있고 죽어도 해야 할 것이 있고

죽어도 살아야 할 것이 있다. 인간은 하나의 기이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운명이란 본성적인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것을 위해 왔다고 할 수 있는운명을 지니고 태어났다.

죽음이 닥쳐와도 그렇게 안 할 수가 없다. 그것이 사명이다.

이런 삶은 어려서부터 알 수 있는 삶이 아니다.

어떤 때에 갑자기 자기의 일상적인 삶이 깨져 나가고 자기의 본래적인 삶이 드러날 때가 있다. 이것을 절대적인 앎이라고 한다. 사람은 이런 앎을 경험하기 까지는 언제나 인생이 허무하고 무의미하다. 그러나 인간이 자기의 운명을 아는 순간부터 인생은 빛나고 인생은 충만하다. 이 앎은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는 앎이 아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앎이다. 그것을 우리는 진리라고 한다.

인생의 의미가 노출된 것이다. 이 앎을 알면 안 할 수 없다. 이것이 인간의 길이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안 살 수 없다. 이것이 인간의 생명이다.

인간은 진리와 길과 생명을 살아간다. 그것이 나다. 나는 절대다.

안 살 수 없어 살고 안 할 수 없어 하고 안 알 수 없어 안다.그래서 절대라는 것이다.」




<새해> (pp.114∼115)

「찰나란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순간이다. 이 찰나의 결정이 평생을 지배하기 때문에 찰나 속에 영원이 있다고 한다. 사람에게는 한 순간에 영원을 결정하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영원을 결정하는 이 순간은 무서운 순간이다.

구원은 내일에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순간에 있다.

영생은 순간에 있다.순간이란 시간을 초월한 순간이다.

시간을 초월했다는 말은 진리를 깨달았다는 말이다.

진리를 위하여 바쳐진 삶은 어디서나 영생이다.

진리의 세계는 실천의 세계이다. 영생은 실천 속에 있다.

자기의 할 일을 자기가 할 때에 그 속에 영생이 있는 것이다.

진리란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자기의 할 일을 안 사람에게는 일하는 것이 그대로 즐거움이다.

참회하고 사는 삶이야말로 참 삶이다.」




<정년퇴직> (pp.116∼117)

「키에르케르고는 인생을 삼단계로 나누어 미적 실존도 중요하고 윤리적 실존도 중요하지만 종교적 실존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미적 실존은 자연 앞에 선 인생이요, 윤리적 실존은 인간 앞에 선 인생이요,

종교적 실존은 신 앞에 선 인생이다.

인생의 판가름은 신 앞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인생은 학생시절도 문제가 안되고 재직시절도 문제가 안된다.

정년퇴직 후가 문제이다. 인생의 심판은 정년퇴직 후에 있으며

인생의 가을은 정년퇴직 후이다. 공자는 정년 이후에 육경을 편찬하였다고 한다.

공자의 가치는 정년 후에 빛난다.

예수는 죽은 후 부활하였다. 예수의 가치는 죽은 후에 빛난다. 우리의 일생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죽은 후에 더욱 빛나게 사는 것이 영생이다.」




<원수> (pp.119∼120)

「누군가 나에게 맞선다는 것은 나와 맞설 만한 힘이 있으니까 맞서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나보다 약하니까 복종하는 것이다.

나에게 복종하는 놈 만명을 잡아서 일을 시켜도 나에게 반대하는 놈 한명을 잡아서 일을 시키는 것만 못할 것이다.

아브라함 링컨이 훌륭하다는 것은 그가 대통령이 된 후에 자신의 원수를 데려다가 국무장관으로 일을 시켰다는 데 있다. 사람의 위대함은 그의 원수를 잡아 길들이는데 있다. 사람에게는 원수를 잡아다 친구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것이 영이요, 인격의 힘이다.

자기의 죽음도 맛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참 사람이다.

…죽음을 이긴 사람만이 죽음을 잡아 쓸 수가 있다.

죽음을 잡아 쓸 수 있는 사람만이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천국> (p.122)

「간디는 신을 민중속에서 보았고 민중은 신을 간디 속에서 보았다.

간디가 본 신은 힘이었고 민중이 본 신은 빛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빛을 요구한다. 그것이 지도자다.

그런 인격이 나타날 때 천국이 가까워 졌다고 한다. 천국은 먹고 마시는 곳이 아니라 의와 평화와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수호신> (pp.129∼130)

「神이 인간을 위해 있다면 로마의 흥망은 神의 책임이다. 그러나 인간이 神을 위해 있다면 로마 성쇠의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사람은 흔히 神이 인간을 수호한다고 생각하고 호국종교니 구국종교니 하고 야단들이다. 그러나 종교가 나라를 지켜준 일은 없고 오히려 나라가 종교를 지켜주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그리하여 거대한 사찰과 교회가 나오고 승려가 살찌고 신앙은 말라 버려 허울 좋은 제사만이 국민의 재산을 삼켜버린다.

종교를 숭상하고 보호하면 종교는 죽는다. 수호신 종교는 모두 우상숭배다.

우상에게는 이미 생명이 없다. 언제나 종교는 박해에 살아나고

보호에 죽어 버린다. 神을 수호신으로 삼기 전에 인간을 神께로 돌려보내라.

그러면 神도 살고 인간도 산다.」




<零> (pp.131∼132)

「영에다 영을 아무리 더해도 영이다.

그러나 하나에다 영을 겹치면 억도 되고 조도 된다(=).

밀알 한 알이 창고에 있으면 한 알 그대로 이지만 땅에 떨어지면 백배도 되고 천배도 된다. 사람은 무엇을 체득하면 무서운 존재가 된다.

학문도 예술도 도덕도 신앙도 수영도 축구도 다 마찬가지이다.

무엇이든 하나에 헌신할 때 인간은 무서운 존재가 된다.

인간이 어떻게 無에서 無限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에 헌신하는 것이다.

카알라일은 '우주는 성전이요, 세계는 제단이요, 인생은 제물이다'라고 하였다.

허무가 실존이 되는 길은 헌신밖에 없다.

무엇을 위해 열중하고 몰두하고 수도할 때인간은 위대해 지고 자유인이 된다.

영생이란 별 것이 아니다. 무엇에 바쳐진 삶이 영원하다는 것이다.」




<없음> (pp.137∼138)

「零은 인도사람의 발명이고 중국사람은 無라고 했다.

無는 어원적으로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한없이 많다는 뜻이다.

없이 하려 해도 없이 할 수 없는 없음을 '絶對無'라고 한다.

절대무는 있고 있는 존재요, 있었다 없었다 하는 존재자는 相對無다.

상대무는 만물이고 절대무는 창조주요, 상대무는 현상계이고 절대무는 실재계이다.

인간은 절대무도 아니요 상대무도 아니다. 현-존재다.

현-존재란 眞空妙有란 말이다. 존재를 나타내는 존재자,

햇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달 같은 존재이다.

자각하지 못한 자기를 상실하면 인생은 허무해진다.

사람은 허무에서 진공묘유가 되어 절대무를 받아 상대무를 비추게 된다.

무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얼이다. 얼은 철이기에 존재와 시간은 떼어놓을 수가 없다. 철이 들어야 어른이 된다.」




<걱정근심> (pp.139∼140)

「마음이 젊어지면 몸도 젊어진다. 마음이 젊어지지 못하는 까닭은

마음속에 걱정근심이 많은 탓이다. 걱정을 이기는 길은 생각에 있고

근심을 이기는 길은 실천에 있다. 생각은 모든 복잡한 것들을 정리하여 간결하게 만들고 실천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여 평이하게 만든다.

걱정의 복잡함은 애정에서 오고 근심의 어려움은 욕심에서 온다.

생각은 이성을 통해서 인간을 애정 너머 진리로 인도하고, 실천은 경험을 통해서 인간을 욕심 너머 자유로 인도한다.

마음에 빛을 얻으면 마음이 밝아지고, 몸에 힘을 얻으면 몸이 가벼워진다.」




<로고스> (상게서, p.360 계속)

「로고스는 요한의 독특한 신앙이다. 각(覺)이라고 해도 좋고 仁이라고 해도 좋고 道라고 해도 좋다. 이와 같은 정신의 체험이 없으면 지성인은 도저히 절대자와 만날 길이 없을 것이다. 옛날 필로라는 사람이 로고스를 말할 때에는 神과 인간의 중재자로 해석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神이니 인간이니 중간이니 하고 있을 겨를이 없다.

깨치면 살고 깨치지 못하면 죽는 위급한 때에 언제 중간자를 토로할 시간이 있을까. 마치 봄날에 병아리가 깨어 나오듯이 깨어 나오는 것이 각(覺)이요 로고스 LOGOS요 말씀이다.」




<마음과 일과 몸> (p.378)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얼핏 인위적인 것이 깨어지고 자기도 모르는 세계가 스스로 펼쳐져 나오는 말이 진리가 될 때, 그 때야 말로 삶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白樂天은 마음에는 걸리는 것이 없어야 즐겁고 일에는 빈틈이 없어야 깨끗하다고 했다. 참 멋있는 말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고(心無事)일에 빈틈이 없다(事無心). 도에 통하면 걸리는 것이 없고 덕을 이루면 빈틈이 없다. 道通成德이 도덕의 알짬이니라.

지의 세계는 언제나 걸리는 데가 없는 세계요, 행의 세계는 언제나 빈 데가 없는 세계이다. 마음은 언제나 통해야 되고

몸은 언제나 빈틈이 없어야 한다. 무쇠처럼 단단한 몸과, 하늘처럼 툭 터진 마음이 인생의 바탕이니라. 마음에 걱정이 많고 몸에 허약이 많으면

그 인생은 잘못된 인생이다. 마음은 언제나 한가하면 가경이요,

몸은 언제나 빈틈 없으면 진기일 수 있다.」




<飛上> (pp.392∼393)

「인간은 자기의 힘을 넘어서는 어떤 실재를 인정하고 살게 될 때에 겸허해지고 겸손해지고 자기의 분수를 알게 되어, 욕심을 버리고 무지무욕의 세계를 살아갈 수 있다. 이때 자기를 넘는 어떤 힘이 엄습하여 인간의 영성은 개발되고 자기를 넘는 신적인 안목이 열려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고, 불확실하던 것이 확실해지고, 가짜로 보이던 것이 진짜로 보이고, 추하게 보이던 것이 아름답게 보이는 가치의 일대전환을 일으키게 된다.

지금까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애써오던 자기가, 현실을 쉽게 이상화 할 수 있는 자기가 되고 만다. 이런 경험은 누구나 진지하게 살아가면 겪게 되는 하나의 사건이다.」







출처 : 경기대박병오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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