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2002-07-04 오후 4:14
어두움이 없었으면 빛이 있을 수 없음같이 한 사람(첫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망이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또한 한 사람(마지막 아담)의 순종으로 새 생명이 세상에 들어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의 법도입니다.
그러므로 어두움이 먼저요 빛이 나중이며 불순종이 먼저이며 순종이 나중이고 저주가 먼저이고 복이 나중이며 사망이 먼저이고 생명이 나중입니다.『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 4:6) 하신 여기에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심같이 바로 어두움이 먼저입니다.
첫 아담이 먼저이고 마지막 아담이 나중이며 가인이 먼저이고 아벨이 나중이며 이스마엘이 먼저이고 이삭이 나중이며 에서가 먼저이고 야곱이 나중입니다. 또한 사울 왕이 먼저이고 다윗 왕이 나중이며 우리 또한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입니다. 그러므로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 15:44)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 어두움에서 빛으로 불순종에서 순종으로 저주에서 복으로 사망에서 새 생명으로 옮기는 길이 바로 십자가의 도(길)입니다. 이 길을 가려면 제일 먼저 “그 아들에게” 입맞춤이 없이는 이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이는 그가 자기 몸을 버려 멸망의 저주에 있던 우리의 죄를 자기 피를 드려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이는『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 하셨고 또 다시『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하심같이 “그 아들에게” 입맞춤은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일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성경은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시 2:12) 하셨고 또『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전 16:22) 라고 확실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하신 바로 심판의 부활입니다.
그 아들이 친히『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말씀하신 바와 같이 믿는다는 것은 바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또한 순종하는 것은 “그 아들에게” 사랑의 입맞춤이 없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모든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요 21:15-17) 기록 된 대로 세상에 모든(사람) 것보다 주 예수를 더 사랑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그 아들에게” 입맞춤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기록된 실상을 보십시다.『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눅 7:41-50) 고 기록된 이 사실이 “그 아들에게” 입맞춤의 표본입니다.
그 발에 입맞춤! 여기에 깊이 숨은 뜻이 있습니다. 주를 사랑하는 형제들은 이 “발에 입맞춤”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지식이 허락되었습니다. 이는 바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이 그리스도의 지체 곧 “그 아들”의 발입니다.
기록되기를『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 3:14) 하심이 곧 형제를 사랑함이며 또『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하신 대로 이것이 바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가는 길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3) 이 말씀은 주께서 반드시 이 땅에서 이루실 것입니다. 아멘.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21) 이와 같이 그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사랑의 계명 곧 새 계명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이 사랑의 길이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입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들은 반드시 새 계명을 지키게 될 것입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시 2:12) 아멘.
작은 형제 김윤구
그러므로 어두움이 먼저요 빛이 나중이며 불순종이 먼저이며 순종이 나중이고 저주가 먼저이고 복이 나중이며 사망이 먼저이고 생명이 나중입니다.『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 4:6) 하신 여기에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심같이 바로 어두움이 먼저입니다.
첫 아담이 먼저이고 마지막 아담이 나중이며 가인이 먼저이고 아벨이 나중이며 이스마엘이 먼저이고 이삭이 나중이며 에서가 먼저이고 야곱이 나중입니다. 또한 사울 왕이 먼저이고 다윗 왕이 나중이며 우리 또한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입니다. 그러므로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 15:44)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이제 어두움에서 빛으로 불순종에서 순종으로 저주에서 복으로 사망에서 새 생명으로 옮기는 길이 바로 십자가의 도(길)입니다. 이 길을 가려면 제일 먼저 “그 아들에게” 입맞춤이 없이는 이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이는 그가 자기 몸을 버려 멸망의 저주에 있던 우리의 죄를 자기 피를 드려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이는『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 하셨고 또 다시『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하심같이 “그 아들에게” 입맞춤은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일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성경은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시 2:12) 하셨고 또『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전 16:22) 라고 확실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하신 바로 심판의 부활입니다.
그 아들이 친히『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말씀하신 바와 같이 믿는다는 것은 바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또한 순종하는 것은 “그 아들에게” 사랑의 입맞춤이 없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모든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요 21:15-17) 기록 된 대로 세상에 모든(사람) 것보다 주 예수를 더 사랑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그 아들에게” 입맞춤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기록된 실상을 보십시다.『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눅 7:41-50) 고 기록된 이 사실이 “그 아들에게” 입맞춤의 표본입니다.
그 발에 입맞춤! 여기에 깊이 숨은 뜻이 있습니다. 주를 사랑하는 형제들은 이 “발에 입맞춤”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지식이 허락되었습니다. 이는 바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이 그리스도의 지체 곧 “그 아들”의 발입니다.
기록되기를『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 3:14) 하심이 곧 형제를 사랑함이며 또『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하신 대로 이것이 바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가는 길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3) 이 말씀은 주께서 반드시 이 땅에서 이루실 것입니다. 아멘.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21) 이와 같이 그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사랑의 계명 곧 새 계명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이 사랑의 길이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입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들은 반드시 새 계명을 지키게 될 것입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시 2:12) 아멘.
작은 형제 김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