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작마당

오늘이라 일컫는 날
none 2009-02-23 오전 7:32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히3:13)

여기에서 오늘이라 일컫는 날은 단 하루가 아니고 지금부터 세상 끝나는 마지막까지입니다.
이 말씀은 너희라 일컫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오늘이라 일컫는 날은 있어도 내일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제까지는 죄인이었거나 그리스도의 열매가 없었을지언정 오늘이라 일컫는 마지막 날에 참 세례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열매를 맺는 삶을 지금부터 마지막 날까지 하여야 하기 때문에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하여 매일 피차 권면하여 죄의 유혹으로 죄가 들어와 마음이 완고하게 되지 않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여 우리에게는 오늘은 있어도 내일은 없으니 오늘 부지런히 살펴서 흠 없는 몸이 되어야합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6:4-6)”

우리가운데 진리를 깨달았고 나에게도 그리스도의 열매가 있다고 자부했는데 다시 육신에게 져서 죄 가운데 떨어져서 고민하는 일들이 있어집니다. 즉 사단의 올무에 빠진 것입니다.
이때 위의 말씀으로 다시 새롭게 할 수 없음을 알고 나는 하나님께서 버린 자거나 그리스도에서 떨어진 자로구나 하여 크게 실망하여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버리고 믿음을 포기하고 세상 속으로 되돌아 갈 수가 있습니다. 믿음을 파손하는 이 행위야말로 하나님을 배신하는 믿음 없는 사망의 죄로 영원한 사망의 늪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사단의 승리입니다. 믿음의 길을 함께 가는 우리에게 이러함 불행한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그래서 다음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19:31-34)“

사실은 그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하나 다른 두 사람처럼 아직 온전히 죽지 아니하면 사단의 시험으로 다리를 꺾이는 아픔과 옆구리를 찔리는 아픔을 겪어야 합니다. 그래도 죽지 않으면 온전히 죽을 때까지 계속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완전한 주검으로 될 때라야 창으로 옆구리를 찔려서 육의 생명인 피와 물이 나오더라도 육신의 아픔을 느끼지 않으며 사망을 이길 수 있는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온전한 죽음이 안 된 자신의 상태를 모르고 자기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온전함을 이룬 자 이었던 것으로 착각을 한 것입니다. 어찌 보면 교만하여 넘어진 자입니다. 육신에 진다는 것은 성령을 좇아 행하지 아니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의 교만함을 버리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다시는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등의 교훈의 초보를 닦을 것이 아니라 끝까지 성령을 좇아 예수를 붙잡고 아무리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성령을 좇아 믿음으로 일어서는 연단을 쌓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순종치 아니하는 자식들에게 임하느니라)“ (골3:5-6)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지 못한 육신의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불순종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불순종의 사람에서 순종의 사람으로 변하지 않고서는 구원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이라 일컫는 날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여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하신 말씀을 새겨 날마다 하나님의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으로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서 사는 거룩한 영의 사림이 되어 있어야 할 줄을 압니다.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눅13:6-9)”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살전5:1-2)”

오늘날 우리에게 열매가 없으면 어찌 될 것인지를 아는 명확한 결과를 두고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의 심판을 우리는 항상 준비하고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꼭 때를 기다리시지 않습니다. 필요하실 때 오셔서 열매가 없으면 때가 아니더라도 열매 없는 나무를 저주하시고 뿌리로부터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막11:13-14,20-21)
이는 하나님의 권한이시기에 어느 때에 오시든지 우리는 행하시는 이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4:11)”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저 시대의 사람은 한 사람도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어서 안식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의 생명만이 안식으로 들어가는 온전한 생명으로 되어 지는데 순종함은 고난을 받아서 배워진다고 하였습니다.
육신과 싸워 이기는 삶이 있어질 때 인내에 경건을 더하는 생명이 되고 그 생명이 자라서 빛을 발할 때 신령한 몸으로 되며 날마다 빛과 어두움을 거쳐 자라나는 열매가 익어서 고난으로 말미암은 단단한 순종의 열매로 완성되는 곡식이 되어 하늘나라의 곡간에 들어가는 하나님의 안식에 이르게 될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 하실 때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는 단 하루에 모든 창조와 지으심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날 제7일이 되어서 안식에 들어가심 같이 우리의 열매도 어두움과 빛으로 연단을 통해 오늘이라 일컫는 날이 끝나는 날에 이루어지게 될 줄을 압니다.
고난과 고통으로 인한 연단이 없이는 순종을 배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때가되어 희어 졌으니 언제 추수할 일군이 올지 모릅니다.
설마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 하는 허탄한 사단의 시험과 다툼에 빠져서 영원한 후회를 말고 오늘이라 일컫는 이 모든 마지막 날에 우리는 뒤를 돌아보는 어리석은 사단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주의 긍휼하심을 입어 범사에 그에게 까지 자라나는 믿음으로 날마다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두움의 일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고 낮에 속하여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는 새사람을 입고 정욕을 위하여 사는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않고 오늘이라 일컫는 날에 사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주님 그렇게 되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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