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작마당

십자가의 영원한 속죄
마당쇠 2006-04-09 오후 4:52
다니엘님,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죄인을 위하여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신 그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의 피와 죽음으로 이루어질 때 하나님의 가슴은 찢어지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눅 23:44-45)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세상에 보내신 것은 혈육에 속하여 죄의 종으로 사망에 매여 있는 자기 백성을 죄 있는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놓아주려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이같이 큰 구원은 회개와 속죄의 차원이 아니라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게 되는 차원입니다. 기록된바『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롬 6:6-7) 하신 증거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만 죽은 복음은 반쪽 복음입니다. 죄인도 예수와 함께 죽은 복음이 온전한 복음입니다. 곧『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를 속죄의 죽음으로만 믿는 복음은 입에서 꿀같이 단 복음이고 죄인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믿음에 이른 복음은 배에서 쓴 복음입니다.

이러하므로 생명을 속하는 속전(반 세겔)이 합하여 한 세겔이 될 때 온전한 속전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기록되기를『....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마 17:27) 하신 증거와 같은 것입니다.

이러므로 탕감은 일만 달란트탕감 받은 것에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고 일백 데나리온 탕감 해 주는 것에서 끝이 납니다. 만일 구원이 하나님의 사랑만으로 끝이 난다면 새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다”로 끝이 나야 하는데 성경은『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온전한 복음에 대하여『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 3:14)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구원은 예수에게서 끝이 아니고 우리까지이므로 우리에게도 사랑의 고난을 남겨 주셨습니다. 이러므로 성경이『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즉 온전한 복음은『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딤후 2:11) 입니다. "미쁘다 이말이여" 가 곧 온전한 복음입니다.

이러므로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은 자에게는 회개를 해야 하나? 안해야 하나? 가없습니다. 이는 주와 함께 죽은 믿음의 실상이 있는 자는 이제 죄와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배에서 쓰게 되는 복음이 다시 전해야 할 복음이며 이 복음이 바로 영원한 복음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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