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룻기 4:1~6
2000-06-17 오후 5:05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가서 거기 앉았더니 마침 보아스의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그가 와서 앉으매 보아스가 성읍 장로 십인을 청하여 가뢰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그들이 앉으매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관할하므로 내가 여기 앉은 자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고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그가 가로되 내가 무르리라 보아스가 가로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야 할찌니라 그 기업 무를 자가 가로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이제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호와의 총회에 영원히 들어오지 못할 모압 여인을 그 총회에 들어오게 하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실상은 ‘죽은 자의 아내’임으로 부부는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말론의 죽음 안에 모압 여인 룻도 함께 죽은 것입니다.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이기 때문에 그와 함께 죽었습니다. 죽은 룻은 ‘나온 바 본향’에 속한 옛 사람이고 이제 다시 살리심을 받은 룻은 새 생명의 룻입니다. 그래서 ‘보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여 알지 못하는 민족에게로 와 ‘하늘의 시민권’을 얻게 될 것입니다.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가 앉으니’ 곧 하늘의 처소를 말합니다. 여기에도 ‘마침’이란 말이 또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이 아시는 한계를 우리는 ‘마침’ 또는 ‘우연히’라고 할 뿐입니다. 이 모든 일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경륜과 계획과 섭리이십니다.

‘보아스의 말하던 기업 무를 자’ ‘더 가까운 친족’ 곧 하늘의 제사장 멜기세덱이 지나갑니다. 하나님의 맏아들 주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되 ‘아무여’ 한 것은 그에 대한 그 이름과 내력을 말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기록되기를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함으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고 증거된 대로 해석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아무여’라고 하였으니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하신 증거대로 ‘아무여’가 누구이며 그의 존재가 무엇인지 그 때에는 온전히 알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도 있습니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말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함으로 해석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듣는 것이 둔하면 차라리 의의 말씀을 경험할 때까지 듣지 않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여’가 보아스 곁에 와서 앉았습니다. 이 일은 둘만이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백성의 장로들 열을 청하여 이 일의 증인으로 삼았습니다. 이르기를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관할하므로 내가 여기 앉은 자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고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그가 가로되 내가 무르리라’

여기서 ‘아무여’는 순전한 유다인인 나오미 뿐인 줄 알고 ‘내가 무르리라’ 했습니다. 그러나 ‘보아스가 가로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야 할찌라’ 하니 이는 모압 여인 곧 육에서 영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죽은 자의 아내를 아내로 맞아 그에게서 죽은 말론의 이름으로 대를 잇게 하는 일로 인해서 ‘아무여’는 순전한 영뿐이시기 때문에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혈육에 속하셨던 우리와의 형제이기에 이 기업을 무르기에 합당하며 모압 여인 룻과 기생 라합의 아들 보아스는 연합하여 모압에서 죽은 말론(세상에서 십자가에 죽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룻에게서 대를 잇게 하여 그 사랑의 이름이 끊어지지 않게 해야 마땅합니다. 그래서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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