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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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0 오전 9:1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장자이시며 그의 생명은 속 생명으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생명 일지라도 아들의 흔적이 없으면 유업 받을 장자를 제하여 버리십니다.
에굽 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 세상의 장자를 모두 멸하였지만 가족 수대로 유월절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의 장자는 무사 하였습니다.
모세를 통해 보여주신 모든 예표는 육신의 눈에 보이는 하늘나라의 모형과 그림자인 허상 이었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시고 부리시는 성소와 참 장막은 새 언약으로 세우시는 참 형상이며 실상입니다.
그래서 짐승의 피로 대신한 허상의 모든 것을 실상의 참인 아들의 피로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이신 예수 죽인 것을 내 몸에 짊어져야 그 피로 하늘나라의 유업 받을 장자의 생명을 지킬 수 있음은 당연합니다.
세상에서도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 또는 가족을 위해 일하다 생명을 잃게 되면 아내는 우리를 먹여 살리려 남편을 사지에 몰아 내가 죽였다고 통곡합니다. 그러나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는 회사나 국가가 죽였다고 하면서 보상금을 받아서 배불리 잘 먹고 살며 더 악독한 아내는 더욱 몫을 챙겨서 다른 정부와 함께 다른 길을 가는 것이 오늘 우리 기독교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사도께서 말씀하신대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셨으니 최소한 나 때문에 돌아가셨음을 알고 내가 죽인 것과 방불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 죽인 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영과 반대되는 육신의 사람 즉 율법 안에 있는 육의 사람이 영을 미워해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처럼 가인의 후예 곧 육의 사람인 나와 유대인, 로마 군인들 모두가 합세하여 영의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것입니다.
또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셨으므로 나 때문에 돌아가심으로 결과적으로 볼 때 내가 죽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깊이 보면, 두 번째의 나는 겉 사람의 내가 아니고 속사람의 나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영의 사람을 사랑하시지 육의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느끼지 못한다면 아직 그에게는 예수님이 사랑하는 속사람의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우는 다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겉 사람과 속사람 모두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안팎으로 예수를 죽인 나의 빚은 오직 나의 전부를 드려 갚을 수밖에 없는 것이 나의 현실입니다.
먼저, 그의 죽음의 피로 우리의 생명이 지켜지듯이 우리 또한 그의 본을 따라 그와 함께 온전한 번제를 드려야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쁘게 흠향하시는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제사를 드릴 때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태워 없애고 그 피만 가지고 제사 드렸듯이 우리의 육체도 속 생명조차도 영문 밖에서 예수와 함께 죽어야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예수 죽인 것을 우리 몸에 지녀야 우리 죽을 육체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리심을 받아 예수의 생명이 우리 육체에 나타남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 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의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후4:11)”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미 추수할 시기가 되어 초실절의 낫을 대었지만 아직 줄기에 물기와 영양분이 남아 있어 초록빛으로 살아 있어 처음에는 안 죽은 것 같지만 이미 죽은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잎과 줄기는 차츰 말라가고 곡식은 더 여물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을 확실하게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친 믿음만 지니면 도리께 질로 얻어맞고 알곡과 껍데기가 분리되는 타작마당을 거쳐 깨끗한 알곡이 되어 하늘나라의 곡간에 들어가는 수장절의 영광이 올 줄 믿습니다.
아무리 알곡이 잘 여물었어도 껍데기와 분리되어 깨끗함을 입는 경건의 과정이 없으면 쭉정이와 함께 불에 던 지워집니다.
타작마당의과정이 바로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는 베드로 사도의 말씀인 것을 알았습니다.
타작마당은 마지막 죽음으로 주검과 생명으로 분리되는 단계입니다.
끝으로 내가 십자가에서 죽더라도 나 혼자서 죽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없느니라”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주와 함께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주와 함께 죽는 연합이 있어야 예수로 말미암아 다시 사는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 죽어도 예수! 살아도 예수! 항상 예수뿐이며 우리는 주의 것입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 우더라(계20:1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장자이시며 그의 생명은 속 생명으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생명 일지라도 아들의 흔적이 없으면 유업 받을 장자를 제하여 버리십니다.
에굽 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 세상의 장자를 모두 멸하였지만 가족 수대로 유월절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의 장자는 무사 하였습니다.
모세를 통해 보여주신 모든 예표는 육신의 눈에 보이는 하늘나라의 모형과 그림자인 허상 이었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시고 부리시는 성소와 참 장막은 새 언약으로 세우시는 참 형상이며 실상입니다.
그래서 짐승의 피로 대신한 허상의 모든 것을 실상의 참인 아들의 피로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이신 예수 죽인 것을 내 몸에 짊어져야 그 피로 하늘나라의 유업 받을 장자의 생명을 지킬 수 있음은 당연합니다.
세상에서도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 또는 가족을 위해 일하다 생명을 잃게 되면 아내는 우리를 먹여 살리려 남편을 사지에 몰아 내가 죽였다고 통곡합니다. 그러나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는 회사나 국가가 죽였다고 하면서 보상금을 받아서 배불리 잘 먹고 살며 더 악독한 아내는 더욱 몫을 챙겨서 다른 정부와 함께 다른 길을 가는 것이 오늘 우리 기독교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사도께서 말씀하신대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셨으니 최소한 나 때문에 돌아가셨음을 알고 내가 죽인 것과 방불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 죽인 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영과 반대되는 육신의 사람 즉 율법 안에 있는 육의 사람이 영을 미워해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처럼 가인의 후예 곧 육의 사람인 나와 유대인, 로마 군인들 모두가 합세하여 영의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것입니다.
또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셨으므로 나 때문에 돌아가심으로 결과적으로 볼 때 내가 죽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깊이 보면, 두 번째의 나는 겉 사람의 내가 아니고 속사람의 나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영의 사람을 사랑하시지 육의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느끼지 못한다면 아직 그에게는 예수님이 사랑하는 속사람의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우는 다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겉 사람과 속사람 모두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안팎으로 예수를 죽인 나의 빚은 오직 나의 전부를 드려 갚을 수밖에 없는 것이 나의 현실입니다.
먼저, 그의 죽음의 피로 우리의 생명이 지켜지듯이 우리 또한 그의 본을 따라 그와 함께 온전한 번제를 드려야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쁘게 흠향하시는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제사를 드릴 때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태워 없애고 그 피만 가지고 제사 드렸듯이 우리의 육체도 속 생명조차도 영문 밖에서 예수와 함께 죽어야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예수 죽인 것을 우리 몸에 지녀야 우리 죽을 육체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리심을 받아 예수의 생명이 우리 육체에 나타남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 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의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후4:11)”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미 추수할 시기가 되어 초실절의 낫을 대었지만 아직 줄기에 물기와 영양분이 남아 있어 초록빛으로 살아 있어 처음에는 안 죽은 것 같지만 이미 죽은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잎과 줄기는 차츰 말라가고 곡식은 더 여물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을 확실하게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친 믿음만 지니면 도리께 질로 얻어맞고 알곡과 껍데기가 분리되는 타작마당을 거쳐 깨끗한 알곡이 되어 하늘나라의 곡간에 들어가는 수장절의 영광이 올 줄 믿습니다.
아무리 알곡이 잘 여물었어도 껍데기와 분리되어 깨끗함을 입는 경건의 과정이 없으면 쭉정이와 함께 불에 던 지워집니다.
타작마당의과정이 바로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는 베드로 사도의 말씀인 것을 알았습니다.
타작마당은 마지막 죽음으로 주검과 생명으로 분리되는 단계입니다.
끝으로 내가 십자가에서 죽더라도 나 혼자서 죽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없느니라”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주와 함께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주와 함께 죽는 연합이 있어야 예수로 말미암아 다시 사는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 죽어도 예수! 살아도 예수! 항상 예수뿐이며 우리는 주의 것입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 우더라(계20:1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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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쇠
2009-01-20 오전 11:08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전 1:30-31)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