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작마당

신앙상담
마당쇠 2006-03-28 오전 6:50
그리스도의 평강이 늘 함께 하시기를 원합니다.

질문의 모든 답은 진리의 말씀 안에 다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 되신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온전한 답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외에는 선생이 없습니다. 이는 기름부음(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을 가르치고 참되고 거짓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저도 진리를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지만 아직 진리를 온전히 알지 못합니다. 그 날에 가서야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주를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진리를 안다고 하면 아직 마땅히 알아야 할 진리는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형제님이 대구교회에 대하여 혼돈이 되신다니 저도 잠시 동참해 봅니다. 저도 대구교회의 형제들을 두 번 만나 교제를 나눠 봤습니다. 한번은 강원도영월에서, 또 한번은 서울잠실에서입니다.

죄에 대하여 예수가 죽임을 당하시고 의에 대하여 그리스도가 다시 살리심을 받으신 것이 곧 진리요 복음입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이 실상으로 내게 화합이 되지 아니하면 예수 죽음만 있고 내 죽음은 없으며 그리스도의 부활만 있고 내 부활은 없습니다.

이는 바보 처녀가 자기 마을 처녀의 시집가는 날 마치 자기가 시집가는 양 기뻐 뛰노는 모습과 같이 됩니다.

이러므로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어야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됩니다. 그의 죽으심 안에서 내가 발견되어야 되고 그의 부활 안에서 또 다른 내가 발견되어야 합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따로 우리 따로 가 아닙니다. 둘이 한 몸을 이루는 이 비밀이 곧 진리입니다.

그 안에서 나의 해결이 없는 예수는 참 예수가 아니고 다른 예수입니다. 다른 예수 안에는 내가 없습니다. 이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고 진리를 증거 하셨습니다. 그 안에서 발견 되는 것이 곧 구원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하나님과 나와의 대화이므로 누가 하라 말라 할 것이 아닙니다. 배고픈 애기는 누가 울라고 해서 우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배고프고 아프면 울고 배부르고 평안하면 웃습니다. 우는 것도, 좋아서 옹알거리는 것도 대화입니다. 애기의 대화가 아무에게도 구속받지 않음 같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또한 구속할 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에는 기본 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가 곧 기도의 틀입니다. 이 틀을 벗어난 기도는 모두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육체의 소욕입니다. 이 틀을 벗어나면 사단의 유혹에 반드시 빠지게 됩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의 소욕을 거스리는 사단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길이 있는 지도책입니다. 가보지 못한 길은 지도책이 없이는 갈 수 없습니다. 기록되기를『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하신 증거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주께서 형제님의 눈을 열어 죽은 교회가 아닌 산 교회를 보게 하시고 산 교회에 참예케 하시기를 원합니다. 산 교회에 안에는 산다고 증거를 받은 거룩한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 4:6)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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