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아들과 멸망의 아들
2009-01-22 오전 11:00
사랑의 아들은 아들을 시인하는 사람이고 멸망의 아들은 아들을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가 있어도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기록된바『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요일 2:23) 하신 증거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아들을 시인하는 자는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 부르나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내가 곧 하나님이라 하는 자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에 대하여 성경은『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아들이 친히『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멸망의 아들은 아들을 부인합니다. 이는 생명은 하나인데 아버지와 아들은 생명이 둘로 나뉘었으므로 이것이 곧 죄라고 유혹합니다. 이러므로『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요 5:26-27) 라고 증거하신 말씀조차도 죄로 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말씀 자체를 부인함이 곧 영생이라고 유혹합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께서 그 아들로 말미암아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막아 보려는 사단의 마지막 유혹입니다. 그래서 자기 생명은 곧 하나님의 생명이지 개체로 나누인 생명이 아니므로 결국은 자기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멸망의 아들이 사단의 사역자가 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은 아버지와 아들에 관하여 더욱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곧『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 14:28-29) 라는 증거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생명은 하나이나 아들의 생명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생명이므로 아버지보다 작은 생명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증거하시기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라고 증거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 10:30) 말씀하신 것은 아버지의 생명을 받은 아들이시라도 아버지께서 그 생명을 원하시면 다시 내어 드리는 아들이시므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라고 증거하신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와 하나님은 하나이니라”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부인하는 자들 곧 하나님 아버지를 모르는 유대인들과 언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곧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저희가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요 10:30-39) 라는 증거와 같은 것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와 하나이심을 더욱 분명하게 증거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기록된바『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 17:22-24) 하신 증거의 말씀입니다.
그러하므로 아버지께서 그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어 자기 보좌 우편에 앉히신 것입니다. 이러한 아들임을 태초부터 아셨기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마 17:5) 라고 아버지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성경은『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 라고 사도로도 증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모든 것 곧 나라와 권세와 영광까지 다 주셨으나 아들은 그것을 자기가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 6:13) 이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2-24)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칠 때라” 하셨으니 받으셨던 때가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기록된바『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5) 하신 증거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아버지와 사랑하는 아들의 관계는 아버지 안에서 영원합니다. 기록된바『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히 5:7-10) 라는 증거의 말씀대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게 하신 것 뿐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영원한 대제사장이라 칭하시어 또 다시 영화롭게 하신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니라『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 ....』(히 1:6) 라는 증거의 말씀같이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하는 영광까지 주신 것입니다. 그러하나 이 아들은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의 것이라 하십니다.
곧『내 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요 17:9-10) 하신 증거와 같은 것입니다.
사단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런 영광을 얻는 것을 시기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막아 보려고 하나님의 생명을 개체로 나누면 그것이 죄이므로 자녀를 부인하고 자기가 하나님임을 알아야 영생이라고 교묘하게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러하나『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8-39) 하신 증거의 말씀대로 멸망의 아들에게 속한 자들은 멸망의 아들과 함께 멸망을 받을 것이고 사랑의 아들에게 속한 자는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사랑의 아들을 살리신 이의 영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이러므로 진리의 말씀은 지금도 밝히『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없는 멸망의 아들에 관하여는『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살후 2:3-8) 라고 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적그리스도의 영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혈육에 속하여 순종함을 배워서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케 되는 것을 철저하게 막으려합니다. 이러므로 성경이『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1-3) 라고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멸망의 아들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영으로 온 것이지 육체로 오신 것이 아니라고 속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하므로 사람이 아들을 시인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 역사는 아버지와 아들의 역사이며 이와 반대로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을 부인하고 내가 곧 하나님이라고 속이는 역사는 사단과 멸망의 아들의 역사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진리의 말씀 안에서 이러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모두 함께 영원한 영광을 돌리십시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아들을 시인하는 자는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 부르나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내가 곧 하나님이라 하는 자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에 대하여 성경은『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아들이 친히『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멸망의 아들은 아들을 부인합니다. 이는 생명은 하나인데 아버지와 아들은 생명이 둘로 나뉘었으므로 이것이 곧 죄라고 유혹합니다. 이러므로『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요 5:26-27) 라고 증거하신 말씀조차도 죄로 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말씀 자체를 부인함이 곧 영생이라고 유혹합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께서 그 아들로 말미암아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막아 보려는 사단의 마지막 유혹입니다. 그래서 자기 생명은 곧 하나님의 생명이지 개체로 나누인 생명이 아니므로 결국은 자기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멸망의 아들이 사단의 사역자가 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은 아버지와 아들에 관하여 더욱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곧『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 14:28-29) 라는 증거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생명은 하나이나 아들의 생명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생명이므로 아버지보다 작은 생명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증거하시기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라고 증거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 10:30) 말씀하신 것은 아버지의 생명을 받은 아들이시라도 아버지께서 그 생명을 원하시면 다시 내어 드리는 아들이시므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라고 증거하신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와 하나님은 하나이니라”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부인하는 자들 곧 하나님 아버지를 모르는 유대인들과 언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곧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저희가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요 10:30-39) 라는 증거와 같은 것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와 하나이심을 더욱 분명하게 증거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기록된바『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 17:22-24) 하신 증거의 말씀입니다.
그러하므로 아버지께서 그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어 자기 보좌 우편에 앉히신 것입니다. 이러한 아들임을 태초부터 아셨기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마 17:5) 라고 아버지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성경은『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13-14) 라고 사도로도 증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모든 것 곧 나라와 권세와 영광까지 다 주셨으나 아들은 그것을 자기가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 6:13) 이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2-24)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칠 때라” 하셨으니 받으셨던 때가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기록된바『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5) 하신 증거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아버지와 사랑하는 아들의 관계는 아버지 안에서 영원합니다. 기록된바『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히 5:7-10) 라는 증거의 말씀대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게 하신 것 뿐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영원한 대제사장이라 칭하시어 또 다시 영화롭게 하신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니라『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 ....』(히 1:6) 라는 증거의 말씀같이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하는 영광까지 주신 것입니다. 그러하나 이 아들은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의 것이라 하십니다.
곧『내 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요 17:9-10) 하신 증거와 같은 것입니다.
사단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런 영광을 얻는 것을 시기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막아 보려고 하나님의 생명을 개체로 나누면 그것이 죄이므로 자녀를 부인하고 자기가 하나님임을 알아야 영생이라고 교묘하게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러하나『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8-39) 하신 증거의 말씀대로 멸망의 아들에게 속한 자들은 멸망의 아들과 함께 멸망을 받을 것이고 사랑의 아들에게 속한 자는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사랑의 아들을 살리신 이의 영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이러므로 진리의 말씀은 지금도 밝히『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없는 멸망의 아들에 관하여는『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살후 2:3-8) 라고 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적그리스도의 영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혈육에 속하여 순종함을 배워서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케 되는 것을 철저하게 막으려합니다. 이러므로 성경이『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1-3) 라고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멸망의 아들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영으로 온 것이지 육체로 오신 것이 아니라고 속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하므로 사람이 아들을 시인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 역사는 아버지와 아들의 역사이며 이와 반대로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을 부인하고 내가 곧 하나님이라고 속이는 역사는 사단과 멸망의 아들의 역사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진리의 말씀 안에서 이러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모두 함께 영원한 영광을 돌리십시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