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랑하사”란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인지?
2006-12-04 오전 11:58
“이처럼”이란 말은 객관적인 경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주관적인 경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누구에게나 주관적인 경험에서만 생명으로 역사하십니다. 기록된바『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 5:13-14) 하신 증거와 같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보내심을 받은 모든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하나님의 사역에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직임을 맡아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자기들이 맡은 분야에서 죽도록 충성하였습니다.
이중에 사도 요한도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 하는 직무를 맡아 같은 성령을 따라 충성스럽게 증거하였습니다. 이에 요한은 그 사랑을 친히 경험하고 말로는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어『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곧 “이처럼”이란 주관적인 그 사랑 안에서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증거하신 것입니다.
그는 항상 그의 품에 기대어 누어서 그 사랑을 듣고 보고 주목하고 손으로 친히 만져 보았습니다. 이는 그 사랑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고 증거하신 것입니다.
요한은 자기가 듣고 보고 주목하고 손으로 만져본 그 사랑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주신 사랑임을 알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증거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 사랑을 경험한 자만 그 사랑을 앎으로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이러므로『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라고 증거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을 받은 자 만이 압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선지자들과 사도들 중에서 요한만큼 그 사랑을 깊이 알게 하신 자가 없습니다. 이러므로 성경에『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요 13:23) 라고 증거 되었고 또한『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 19:26-27)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요 21:20) 하신 증거의 말씀을 보아 요한은 항상 그 사랑 안에서 그 사랑의 품에 의지하여 지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그 사랑은 기록된바『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사 40:11) 하신 증거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하므로『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7-19) 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처럼”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 사랑이 없으며 그 사랑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도 없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 거하는 자마다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 마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말씀은 누구에게나 주관적인 경험에서만 생명으로 역사하십니다. 기록된바『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 5:13-14) 하신 증거와 같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보내심을 받은 모든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하나님의 사역에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직임을 맡아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자기들이 맡은 분야에서 죽도록 충성하였습니다.
이중에 사도 요한도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 하는 직무를 맡아 같은 성령을 따라 충성스럽게 증거하였습니다. 이에 요한은 그 사랑을 친히 경험하고 말로는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어『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곧 “이처럼”이란 주관적인 그 사랑 안에서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증거하신 것입니다.
그는 항상 그의 품에 기대어 누어서 그 사랑을 듣고 보고 주목하고 손으로 친히 만져 보았습니다. 이는 그 사랑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고 증거하신 것입니다.
요한은 자기가 듣고 보고 주목하고 손으로 만져본 그 사랑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주신 사랑임을 알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증거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 사랑을 경험한 자만 그 사랑을 앎으로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이러므로『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라고 증거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을 받은 자 만이 압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선지자들과 사도들 중에서 요한만큼 그 사랑을 깊이 알게 하신 자가 없습니다. 이러므로 성경에『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요 13:23) 라고 증거 되었고 또한『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 19:26-27)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요 21:20) 하신 증거의 말씀을 보아 요한은 항상 그 사랑 안에서 그 사랑의 품에 의지하여 지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그 사랑은 기록된바『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사 40:11) 하신 증거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하므로『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7-19) 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처럼”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 사랑이 없으며 그 사랑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도 없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 거하는 자마다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 마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