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가의 태중에 두 민족
2004-02-18 오전 11:38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되는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에『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9-16) 증거된 바와 같이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의 결과입니다.
쌍둥이는 두 생명입니다. 두 생명이라고 두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되는 것이 아닙니다. “리브가가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라고 기록된 바와 같이 궁창 가운데 물에서 두 사람이 잉태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 곧 첫 사람 첫 아담과 둘째 사람 마지막 아담도 오직 한 분뿐이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는 이 두 사람으로 나누입니다. 첫 사람은 육에 속한 어두움의 사람이고 둘째 사람은 영에 속한 빛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라고 말씀하시며 또한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육으로 난 자는 육이요 성령으로 난 자는 영이니” 라고 증거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 한 하나님께로 난 두 사람이 하나는 육체를 따라, 다른 하나는 영을 좇아 날 수 있느냐? 라고 힐문하는 사람이 있겠으나 하나님은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시며, 평안도 짓고 환란도 창조하십니다. 기록되기를『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 45:5-7)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기록되기를『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롬 9:21-23) 하심 같이 첫 사람 아담은 진노의 그릇이고 둘째 사람 아담은 긍휼의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리브가의 태중에 두 민족은 하나는 육에 속한 민족이고 하나는 영에 속한 민족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육신에 있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에 있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 하셨습니다. 기록된 말씀대로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기묘한 것은 첫 사람은 영으로 났다가 육으로 마치고 둘째 사람은 육으로 나셨다가 영으로 마치신 것입니다. 기록되기를『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마 21:28-31) 하심 같이 십자가의 도는 육신에 속했던 영의 자녀들이 육을 벗어버리고 영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서는 육에 속한 자요 야곱은 영에 속한 자입니다. 에서는 어두움이요, 야곱은 빛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육으로 난 에서이지만 그 속에 영으로 날 야곱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딤후 2:19) 하셨습니다. 여기에 자기 백성이란 영으로 다시 나는 자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에서가 나왔는데 야곱이 뒤를 따라 다시 난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고전 15:46) 하십니다. 그러므로 먼저 나온 에서 곧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에서는 미원하고 야곱은 사랑하였다” 하셨습니다.
모든 성경은 “흑암과 빛”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로 시작하여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 “가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 “사울왕과 다윗왕” 그리고 “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 “옛사람과 새사람” “육신에 있는 자와 영에 있는 자”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기록되기를『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 속에 야곱이 있는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할 것입니다. 기록되기를『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하셨고 또한『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7) 하셨습니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작은 형제 김윤구
기록된 말씀에『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9-16) 증거된 바와 같이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의 결과입니다.
쌍둥이는 두 생명입니다. 두 생명이라고 두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되는 것이 아닙니다. “리브가가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라고 기록된 바와 같이 궁창 가운데 물에서 두 사람이 잉태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 곧 첫 사람 첫 아담과 둘째 사람 마지막 아담도 오직 한 분뿐이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는 이 두 사람으로 나누입니다. 첫 사람은 육에 속한 어두움의 사람이고 둘째 사람은 영에 속한 빛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라고 말씀하시며 또한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육으로 난 자는 육이요 성령으로 난 자는 영이니” 라고 증거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 한 하나님께로 난 두 사람이 하나는 육체를 따라, 다른 하나는 영을 좇아 날 수 있느냐? 라고 힐문하는 사람이 있겠으나 하나님은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시며, 평안도 짓고 환란도 창조하십니다. 기록되기를『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사 45:5-7)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기록되기를『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롬 9:21-23) 하심 같이 첫 사람 아담은 진노의 그릇이고 둘째 사람 아담은 긍휼의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리브가의 태중에 두 민족은 하나는 육에 속한 민족이고 하나는 영에 속한 민족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육신에 있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에 있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 하셨습니다. 기록된 말씀대로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기묘한 것은 첫 사람은 영으로 났다가 육으로 마치고 둘째 사람은 육으로 나셨다가 영으로 마치신 것입니다. 기록되기를『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마 21:28-31) 하심 같이 십자가의 도는 육신에 속했던 영의 자녀들이 육을 벗어버리고 영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서는 육에 속한 자요 야곱은 영에 속한 자입니다. 에서는 어두움이요, 야곱은 빛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육으로 난 에서이지만 그 속에 영으로 날 야곱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딤후 2:19) 하셨습니다. 여기에 자기 백성이란 영으로 다시 나는 자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에서가 나왔는데 야곱이 뒤를 따라 다시 난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고전 15:46) 하십니다. 그러므로 먼저 나온 에서 곧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에서는 미원하고 야곱은 사랑하였다” 하셨습니다.
모든 성경은 “흑암과 빛”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로 시작하여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 “가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 “사울왕과 다윗왕” 그리고 “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 “옛사람과 새사람” “육신에 있는 자와 영에 있는 자”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기록되기를『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 속에 야곱이 있는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할 것입니다. 기록되기를『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하셨고 또한『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7) 하셨습니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작은 형제 김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