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믿음과 온전한 믿음
2002-09-07 오후 2:05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입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사정을 하나님의 친구 아브라함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자기의 후사로 세우려 한 자가 셋이 있었습니다. 아브람 때에 둘이 있었고 아브라함 때에 하나였습니다. 아브람 때에 첫 번째는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 이었고, 두 번째는 계집종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 이고, 세 번째는 아브라함 때 자유 하는 여자 사라에게서 난 이삭입니다.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은 아브람이 자기를 사랑하니까 자기가 유업 받을 줄 믿고 있었습니다. 이 믿음은 거짓믿음입니다. 또한 계집종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은 종(죄를 범하는)이면서도 아브람의 아들이라고 유업 받을 줄 믿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 이스마엘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이스마엘의 믿음도 거짓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은 첫 번째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에 대하여 밝히 말씀하시기를『....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창 15:4) 하셨고 두 번째 계집종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에 대하여도『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창 21:10)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마지막 세 번째 자유 하는 여자 사라에게서 난 이삭에 대하여『....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창 17:19) 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창 18:11)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업 받을 이삭은 육체를 따라서는 날 수 없는 자이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 임이 분명합니다. 기록되기를『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 4:18-22) 하셨고 또 증거 되기를『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3) 함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증거 되기를『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50) 고 진리는 밝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육으로 난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구원)받는 다는 거짓 믿음은 사단의 유혹 입니다.
기록되기를『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 2:9-12) 기록 된 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육으로 난 사람이 유업 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하나님의 자녀만이 그리스도와 함께한 하나님의 후사 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 고 확실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유업의 대상은 셋이 있었으나 둘은 버리고 오직 약속의 자녀 하나만
남습니다. 기록되기를『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롬 9:8) 함과 같은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선지자의 글에 예언되기를『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지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슥 13:8-9) 함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사도로 말씀하시기를『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8-9) 함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 <엘리에셀>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 <이스마엘>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곧 둘째 사망입니다.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으면 죄의 몸은 그대로 있습니다. 죄의 몸이 그대로 있으면 아들이 아니고 죄의 종입니다. 이는 죄의 몸이 죄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기록되기를『....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 8:34-36)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복종한다는 것은 진리의 글에 기록 된 대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롬 6:6-7) 함과 같은 것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하신 기록대로 죄에 대하여 죽은 자만 죄에서 벗어납니다. 죄에 대하여 산 자는 그대로 죄 가운데 있습니다. 기록되기를『....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 6:2) 함과 같은 것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 받지 못합니다.이는 하나님의 나라는 “죄의 거하는 바”가 아니고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악을 가리우는데 쓰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죄를 없이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권면 하시기를『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 5:13) 하셨고 또 다시『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벧전 2:16) 하십니다.
그러므로 복음에는 반드시 복종이 있습니다. 이 복종이 바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입니다. 기록되기를『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 1:29) 하셨고 또다시『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 하신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시는 “온전한 믿음”을 주셨습니다.
이 온전한 믿음은 곧『....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딛 1:1) 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많은 말씀을 하십니다. 귀 있는 자는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곧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받는 자는 혈과 육인 “내”가 아니고 하나님께로 난 “그” 입니다. 그러므로『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는 간증이 있습니다. 이를 우리에게 이루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러므로『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 하신 말씀은 진리이고 또한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하시는 간증은 참입니다. 이 간증이 있는 자들은 곧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입니다. 이 부르심 앞에 엎드려 경배 드립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작은 형제 김윤구
아브라함에게 자기의 후사로 세우려 한 자가 셋이 있었습니다. 아브람 때에 둘이 있었고 아브라함 때에 하나였습니다. 아브람 때에 첫 번째는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 이었고, 두 번째는 계집종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 이고, 세 번째는 아브라함 때 자유 하는 여자 사라에게서 난 이삭입니다.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은 아브람이 자기를 사랑하니까 자기가 유업 받을 줄 믿고 있었습니다. 이 믿음은 거짓믿음입니다. 또한 계집종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은 종(죄를 범하는)이면서도 아브람의 아들이라고 유업 받을 줄 믿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 이스마엘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이스마엘의 믿음도 거짓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은 첫 번째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에 대하여 밝히 말씀하시기를『....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창 15:4) 하셨고 두 번째 계집종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에 대하여도『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창 21:10)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마지막 세 번째 자유 하는 여자 사라에게서 난 이삭에 대하여『....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창 17:19) 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창 18:11)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업 받을 이삭은 육체를 따라서는 날 수 없는 자이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 임이 분명합니다. 기록되기를『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 4:18-22) 하셨고 또 증거 되기를『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3) 함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증거 되기를『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50) 고 진리는 밝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육으로 난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구원)받는 다는 거짓 믿음은 사단의 유혹 입니다.
기록되기를『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 2:9-12) 기록 된 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육으로 난 사람이 유업 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하나님의 자녀만이 그리스도와 함께한 하나님의 후사 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 고 확실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유업의 대상은 셋이 있었으나 둘은 버리고 오직 약속의 자녀 하나만
남습니다. 기록되기를『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롬 9:8) 함과 같은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선지자의 글에 예언되기를『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삼분지 이는 멸절하고 삼분지 일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슥 13:8-9) 함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사도로 말씀하시기를『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8-9) 함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 <엘리에셀>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 <이스마엘>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곧 둘째 사망입니다.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으면 죄의 몸은 그대로 있습니다. 죄의 몸이 그대로 있으면 아들이 아니고 죄의 종입니다. 이는 죄의 몸이 죄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기록되기를『....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 8:34-36)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복종한다는 것은 진리의 글에 기록 된 대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롬 6:6-7) 함과 같은 것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하신 기록대로 죄에 대하여 죽은 자만 죄에서 벗어납니다. 죄에 대하여 산 자는 그대로 죄 가운데 있습니다. 기록되기를『....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 6:2) 함과 같은 것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 받지 못합니다.이는 하나님의 나라는 “죄의 거하는 바”가 아니고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악을 가리우는데 쓰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죄를 없이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권면 하시기를『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 5:13) 하셨고 또 다시『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벧전 2:16) 하십니다.
그러므로 복음에는 반드시 복종이 있습니다. 이 복종이 바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입니다. 기록되기를『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 1:29) 하셨고 또다시『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 하신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시는 “온전한 믿음”을 주셨습니다.
이 온전한 믿음은 곧『....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딛 1:1) 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많은 말씀을 하십니다. 귀 있는 자는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곧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받는 자는 혈과 육인 “내”가 아니고 하나님께로 난 “그” 입니다. 그러므로『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는 간증이 있습니다. 이를 우리에게 이루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러므로『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 하신 말씀은 진리이고 또한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하시는 간증은 참입니다. 이 간증이 있는 자들은 곧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입니다. 이 부르심 앞에 엎드려 경배 드립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작은 형제 김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