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작마당

죽을 몸의 구속을 위한 육체의 가시
peter 2021-02-01 오전 6:5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십자가의 도(고전1:18)를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엡2:8)로 옛 사람<죽은자.벧전4:5)>의 육체<죽을몸.롬8:11>와 함께 정과 육심을 십자가에 장사지내고 단번에 들어간 새 생명의 성전에서 자녀들은 영혼 구원(벧전1:9)의 새롭고 산 길을 볼 수 있는 영의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의의 말씀(히5:13)을 행함은 하나님의 열심(고후11:2)이며 산 자로서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고전15:44)과 하나 된 새 생명(롬6:4) 가운데 이제 육체의 남은 때<죽을몸>를 살면서 점진적인 죽을 몸의 구속(롬8:23)을 이루어 그 나라에 들어갈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첫 사람이 아직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다메섹 도상에서 부지중에 그리스도를 빛으로 만나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2:9) 하신 죄에서의 본질적 죽음을 의미하고 있으며
둘째 사람 안에 육체의 남은 때를 사는 죽을 몸을 날마다 죽음에 넘겨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시116:15) 함과 같이 남은 육체에 대한 반복적 죽음으로 날마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을 입은 새 사람으로 거듭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거듭남은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유1:3) 하신 십자가의 도를 통해 단번에 죽는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게 하신 것과
의의 말씀으로 행하여 날마다 죽음으로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하며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4:19) 하신 장성한 자로 그 나라에 들어갈 것에 대한 증거 입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은 장차 흙으로 돌아갈 죽을 몸을 가지고 육체의 남은 때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벧전4:2) 하신 새 생명은 거듭난 산 자의 영으로 “이제 내가<새생명> 육체<죽을몸>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하신 영원한 생명으로 육체의 남은 때를 사는 것입니다

육체가 남은 역사를 살면서 어떤 이들은 제 칠일의 안식 속에서 완성 된 계시의 믿음에만 안주하며 하나님처럼 사는 사람도 있고 아직 안식에 들어 가지 못하고 여섯째 날의 역사를 쉼 없이 행함으로 죽고 또 죽은 가을 나무의 형상으로 날마다 율법을 지고 걸어 다니는 옛 사람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칠일에 안식한 부활 생명은 안식 후 첫날 곧 제 팔일에 일어나 육체가 남은 역사 속에서 진리로 행하여(갈2:14)) 날마다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하는 계시의 역사를 사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믿음 안에서 죄에 대한 단번에 죽음으로 이미 다 이루었다 하신 영혼 구원의 사실과
날마다 죽음으로 점진적인 몸의 구속을 이루며 자기 몸의 행함에서 날마다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하는 이중적 구조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자녀에게 옛 사람<죽은자>과 그 행위<죽을몸>에서 죽은 육은 수에 칠 가치가 없고 이제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심의 명제를 두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흠과 티가 없는 온전한 생명으로 지어져 가기 위해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따라 날마다 진리를 이루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히2:8)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새 생명까지도 온전히 복종하는 것을 볼 수 없는 것은 새 생명 가운데는 육체의 남은 때를 살면서 장차 흙으로 돌아갈 죽을 몸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새 생명을 사는 산 자 안에는 하나님께 복종하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영>과 부지중에 순종을 거부하는 죽을 몸<육>이 남아 있어서 이는 생명의 마음 밭에 마지막 타작 마당이 서기까지 알곡<영>과 가라지<육>가 부득불 함께 공생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일생 동안 세번의 기도에도 벗지 못한 죽을 몸을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로 남겨 두시고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12:7) 하신 육체의 가시를 통해 고난을 유익되게 하셨으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생명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은혜의 장중에서 주님은 때때로 우리 깨우시기 위해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하시고 책망하실 때 자녀는 자고하던 마음을 깨워 진리의 바른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육체의 가시는 사람이 장차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육체의 남은 날 동안 함께 동행하다 없어질 불의의 재물로 사귄 친구와 같습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 하리라-눅16:9)
장자 된 이스라엘(출4:22)에게 불의한 재물로 사귄 친구는 가나안 땅 안에 살아 있는 모든 육체를 진멸하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불의로 화친한 기브온 족속을 살려 둔 것으로 그들은 이스라엘 안에서 나무 패고 물 긷는 종이 되어 불의한 친구의 형상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사실을 증거 된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육체가 된 것도 불 순종한 사람 스스로 자청한 것으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값없이 주신 은혜로 그리스도를 보화로 얻고 그 안에서 발견 된 보배로운 믿음은 가치 없는 자기 죽을 몸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 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하심을 이루는 것이 새 생명 가운데 행하며 육체의 남은 때를 사는 산 자의 일입니다
진리의 믿음(살후2:13)이 낳은 새 생명의 자녀에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쫓던 자기 죽을 몸의 전부를 팔아야 하는 진리의 행함(요이1:4)은 필연적입니다
이로써 하나님 절대 의존적 존재로 하나님 절대 은혜 밖에서는 살 수가 없는 자기 죽을 몸의 전부를 드릴 때에 나<옛사람>의 나<새사람>된 것은 내가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고백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온전한 번제를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이중적 구조는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후4:11) 함과 같이 새 생명 가운데 육체의 남은 때를 사는 죽을 몸을 항상 죽음에 넘기움으로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함은 이루어 산 자 안에서는 죽음과 부활이 영원한 생명으로 하나 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롬6:12)
겉 사람<죽을몸>이 옛 사람<죽은자>의 구습을 쫓을 때 내 안에 죄가 왕노릇하고
속 사람<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영]>과 새 사람<산자>이 하나일 때 내 안에 의가 왕노릇 하여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롬6:7) 함과 같습니다
의가 속 사람 가운데 살아 왕노릇 할 때 죄가 왕노릇 하는 겉 사람은 날마다 죽음의 상태로 이 진리에 있는 상태를 산 자라 하며 영으로 육을 쳐서 새 생명 가운데 행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생명을 사는 자녀가 속 사람과 짝을 하면 하나님의 선을 따라 평안을 얻게 되고
부지중에 겉 사람과 짝을 하게 되면 죄의 후과에서 탄식하며 날마다 죽음을 맛 보게 됩니다
사도의 마음 속에도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 한 켠에 악의 소욕이 함께 있었던 것처럼 죄를 짓지 않는 인생은 없으며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새 생명을 사는 우리 자신도 몸에 빚진 자로 부끄러운 구원 앞에 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7:17) 하셨으니 죄는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과 한 영을 사는 새 생명에게 속한 것이 아니므로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6:14) 하셨습니다
새 생명 안에 육체의 남은 때를 사는 죽을 몸을 따라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8:34) 함과 같고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에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3:9) 라고 하심은 거룩한 열매가 될 그리스도의 씨가 날마다 새 생명 안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새생명>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죽을몸>니라” 하셨으며 이는 내가 죽음일 때 내 안에 그리스도는 생명으로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롬6:11) 함과 같습니다

생명으로 선악 구조에 갇혀 버린 자기 무익함을 아는 자는 항상 자기 죽음의 자리에서 하나님 은혜의 생기만을 바라고 살 수 밖에 없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를 산 자로 여기십니다
하나님 창조의 경륜은 사람이 스스로 자기를 경작하여 새롭게 개선되어 지기를 원하심이 아니라 하나님 절대 의존적 존재로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생명나무 양식으로 만물을 다스릴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창1:28)
그러므로 구원은 사람 스스로 계명을 지키거나 무엇을 행하여 얻는 것이 아니므로 진리 안에서는 율법을 지키는 것도 죄이며 지키지 않는 것도 죄가 되는 것입니다
곧 율법을 행하면 그리스도가 거치는 돌이 되어 십자가를 원수로 행하게 되고 율법을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게 되어 은혜와 진리에 속한 자녀는 십자가에서 율법의 마침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의와 진리의 거룩함을 위한 죽음<생명>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자녀는 옛 사람의 잔재가 남아 있는 죽을 몸을 “나”(롬7:9)로 살지 않고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을 덧입은 산 자의 “그”(고후12:2)를 새 생명으로 살아서 위에서 난 말씀으로 아래서 난 육신을 덮어 육신으로 살지 않고 영으로 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후5:4) 함과 같이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의 세마포로 죽을 몸을 질식시켜 십자가의 죽음 앞에 복종시킬 때 죽을 몸은 나날이 쇠하여 없어져 가고 싹과 이삭과 열매로 자라는 새 생명은 나날이 새로워져서 겉 사람은 망하고 속 사람은 흥하여서 산 자는 내가 죽어진 만큼 그리스도의 생명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9) 하신 우리는 몸에 빚진 자로 살면서
육체의 남은 때를 사는 몸<혼>에 영을 담을 것인지 육을 담을 것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몸이 빛을 쫓아 선으로 나타나면 그가 산 자<새사람>로서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의 지배를 받고 있음의 방증이며
어둠을 쫓아 죄로 나타나면 내가 죽을 몸의 행실과 습관이 남아 있는 죽은 자<옛사람>를 쫓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 하셨으며 평안도 짓고 환란도 창조하셔서 자녀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장중에서 진리의 말씀으로 경작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후5:8-9) 함과 같이 우리는 항상 자기 몸에서 생명을 찾으려다 좌절하고 실망 할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을 떠나 다른이 곧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신 그리스도에게로 가서 열매 맺기를 힘써야 하며 부지중에 몸에 거할지라도 오래 참음으로 진리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힘써 지켜 오직 내 안에서 존귀하신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으로만 나타나기를 힘써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 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2-3)

피조물은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는 발광체가 아니라 다른이의 도움으로 빛을 낼 수 있는 반사체이므로 거룩함을 이루는 진리의 행함도 죽었다 하는 사람의 힘과 노력으로 경작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새 생명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으로 나타내신 생명나무 열매는 돌감람나무<죽을몸>가 참 감람나무<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에 붙어 절로 열매 맺는 것과 같아서 사망은 이김에 삼킨바 되고 죽을 것이 생명에 붙어 죽을 몸도 살리심을 받는 진리의 이치와 같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라-롬8:11)
속 사람<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이 겉 사람<죽을몸>을 쳐서 십자가 앞에 복종시킨 죽음의 상태가 새 생명의 상태로 십자가를 사람 편에서 볼 때는 죽음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생명으로 이 둘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비밀로 영원한 생명의 근원에서 하나입니다

내 구원의 주를 은전 삼십에 팔아 마련한 아겔다마 피 밭은 나그네와 행인으로 살다가는 모든 사람의 무덤이 되었으며 그 후에 심판의 부활로 나온 자는 영벌을 피할 수 없고 생명의 부활로 나온 자는 영생의 나라를 유업 받게 하셨습니다
생명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십자가의 죽음으로 단번에 영혼 구원의 첫째 부활에 참예한 자는 날마다의 죽음으로 몸의 구속을 이루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죽어서 사는 믿음은 십자가의 도로써 단번에 죽음으로 이뤄진 그리스도 도의 초보이며
살아서 영원히 죽지 않는 믿음은 의의 말씀을 행하여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위해 날마다 죽음으로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하는 하나님 말씀의 초보입니다

자녀에게는 생명을 위한 본질적 죽음과 거룩함을 이루기 위한 작은 죽음들이 존재합니다
영벌의 죄에서 한번 죽는 것과
영생의 나라를 살기 위해 남은 육체의 허물에서 날마다 죽는 죽음이 있습니다

구원을 위한 생명의 믿음은 이중적 구조로 설명되어 옛 사람의 단회적 죽음을 통해 새 사람으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것과(요3:3)
새 생명 안에 육체의 가시로 남아 있는 죽을 몸을 십자가 앞에 복종시켜 날마다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성령>으로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하며 그 나라에 들어갈 것에 대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요3:5)

십자가를 사람의 편에서 바라 볼 때는 죽음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생명으로(창48:14) 이 둘을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비밀로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으로 하나입니다
새 생명이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과 속 사람으로 연합하여 겉 사람의 죽을 몸을 쳐서 십자가 앞에 복종시킨 죽음의 상태가 진리 안에서 죽을 몸도 살리심을 받는 생명의 상태입니다
마지막 날에 육체의 남은 때를 살던 죽을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몸에 빚진 자로 살던 새 생명의 영혼을 완성 된 그리스도의 나라로 아버지께 바칠 때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전15:28) 하심 같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온전케 된 새 생명은 주와 같은 줄 아는 신령한 몸으로 홀연히 변화하여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영으로 아버지께 복종케 되는 것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그러므로 믿음의 완성이신 주께서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믿음으로 죽을 몸의 구속을 참음으로 기다리고 진리 안에서 이루며 육체의 남은 때를 사는 것은 우리가 산 자로서 새 생명을 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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