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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
peter 2019-05-31 오전 10:19


*십자가의 도의 실재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이 말씀은 십자가의 도의 중심을 이루며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시는 생명의 실재를 이루어 주시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주의 죽으심과 부활 하심을 믿음으로 연합하여 거듭난 새 생명(그리스도의 영)을 살게 하여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6:17) 함과 같이 그리스도와 교회가 “한 몸”으로 죽고 “한 영”으로 부활하여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새생명(영)을 누리게(이루게) 하심에 있습니다 이는 나를 위해 예비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 있는 은혜로 되어져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진리로써 생명의 실재를 이룸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를 통하여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시는 일, 말씀과 믿음의 실상을 이루는 일은 생명 안에서 날마다 실재로 이루어지고 경험되어 생명 만이 알 수 있고 누릴 수(이룰수) 있는 일입니다

복음을 자기 지식으로 채우는 이들의 자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지식이 없고 그에 따른 안식이 없으므로 항상 타는 목마름으로 물을 찾아 헤맬 수 밖에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영)을 누리고(이루고) 사는 이의 자리는 지식에까지 새롭게 되어 의문과 그에 속한 동요가 없으므로 평안과 안식 있습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모든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2:9)

십자가의 도의 실재는 하나님의 절대 은혜로 부르심을 받아 말씀을 듣고 깨달아 이루어짐의 과정을 거쳐 나타내심으로 완성되어 집니다
그 부르심의 행로에 광야를 지나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제 구시까지 고통의 시간은 어찌 그리 길기만 한지…
죽기를 무서워 하는 목숨은 그리도 모질던지…
십자가의 도의 실재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 되는”(빌3:8-9) “그”(고후12:2)가 실재이며 그가 거룩한 생명 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비밀로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서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생명의 실재입니다

그럼에도 십자가의 도의 실재를 말씀의 은혜를 따라 믿음으로 이루려는 사람과 성경을 알되 자기 의지적 지식을 따라 배우고 가르치려는 자들로 나뉘어 진리는 세상에 머리 둘 곳을 잃고 세상 큰 길가에서 돌 팔매를 맞으며 핍박과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히4:2)
하나님의 아들로 시작하신(막1:1) 진리의 길은 시작을 바로 하지 않으면 허공을 치고 향방없이 달음박질하는 의문의 길에서 일생에 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의 실재는 나를 위해 예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서 그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엡4:13)에 하나를 이룰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의 실재 곧 영적 새생명을 볼 것입니다

*믿음의 행함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이제 거듭난 영으로 실존하는 내 육체 가운데 사는 삶은 믿음과 행함이 하나 된 삶입니다

믿음의 행함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으로 이루어 내는 일에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의지적 믿음으로 정한 선악 구도 속에서 전능하신 신과 경쟁하여 거룩과 사랑과 구제와 충성을 순종이라는 명목으로 경작해 내려 하지만 육체는 육체의 구도로 서로 연합하지 않으면 신의 경지를 이루어 낼 재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인 사람의 열심은 그것을 가능으로 여기며 오늘도 열심히 몸과 마음을 정결케 하여 치성으로 기도하며 헌신으로 거룩을 성취해 내기를 힘쓰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와 함께 혈육에 속하여(히2:14) 육체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고 비로소 성결의 영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영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따라 태초에 말씀이 육신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이 육체를 입으시고 세상에 임하신 것입니다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1:3-4)
그의 속사람<영혼육>은 영이시며 겉사람<영혼육>은 육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막1:1) 하셨고 또한 그 아들이 육체로 임하셨음을 아는 것입니다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요이1:7)

신과 사람의 연합이라는 논리 속에서는 죄와 의와 생명과 구원에 관한 모든 이치가 허구일 수 밖에 없으며 진리가 어그러지면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의 삶” 자체가 성립 될 수 없습니다 <범위의 설명생략>
그러므로 “육체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진리의 뜻이 잠시라도 간과되고 등한히 되었다면 다시금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를 이루어 진실로 지식에까지 새로워지는(골3:10) 새사람을 입어야 할 것입니다 물과 기름이 하나되지 못함 같이 그리스도의 영(신)을 나의 육(사람)에 붙여 이루려 하기 때문에 믿음과 행함이 화합치 못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내(육)가 육체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과 연합(하나) 되지 못하면 결코 세상을 이겨 낼 수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요일5:5)

거듭난(요3:3) 자녀의 결국은 신<영>들이며 지존자의 아들들로써 이는 필연적인 한 몸<육>의 죽음을 통해서만 많은 아들들로 한 영<신>을 살 수 있어서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너희는 범인 같이 죽으며 방백의 하나 같이 엎더지리로다-시82:6-7) 하심과 같고 육은 육이요 성령은 영이라 하심 같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하심이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하심은 육에서 함께 죽고 영으로 함께 사는 "그"에게만 있으므로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3:9) 하심 같이 믿음과 행함은 그<주>를 이룬 생명 안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의 생명은 씨 가진 열매(창1:11)처럼 말씀 안에 생명과 사람들의 빛(요1:4)으로 하나 입니다

육체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진리로 한 몸을 이룬 두 증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의 도의 실재를 가지고 “믿음의 행함”을 이야기 할 때 세상은 이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의아해하고 방종과 나태함으로 여기며 핍박을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도로써 세상 큰 길에서 죽임을 당한 자에게 세상의 관심과 이목이 상관없으며 위로하는 인생 또한 기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이루어 살 때에<행할 때에>
이미 죽음으로 제 구시에서 끝난 잔영들이 허상의 죄들로 나타날 때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수에 칠 가치가 없는 흙의 존재만 뭍으로 드러나 무익한 육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무모함 만이 더욱 폭로 될 뿐입니다 그럴수록 세상(육,정과욕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더욱 시인하게 되어 온전히 내 안에 그리스도만 존귀히 되는 그 날까지 날마다 나를 부인하는 것이 믿음이며 믿음의 십자가를 지는 일이 행함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9:23)
이는 내 신앙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께 나의 전부를 드리는 믿음의 행위이며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육체의 본질이 깨달아 질 때 내 약함 속에서 강함으로 오시는 주님을 경험하게 되고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내 안에 하나님의 열심을 보게 하십니다 다른 강함을 인정하는 내 약함은 자기 부인함의 믿음이며 내 안에 일하시는 다른 이를 위해 나를 비워드리는 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행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롬7:4)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믿음> 것이 하나님의 일<행함>이니라”
하나님의 일<행함>은 육체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입니다

율법적인 선악 구조 속에서 이론적 배움에서 창출된 육신의 업적과 헌신과 구제와 봉사는 다른 종교에서 더 많이 경작되고 있고 그 그림자 뒤엔 항상 육신의 복을 담보로 하는 물질의 요구가 그 실체로 있습니다 오늘날 이를 모방한 교회의 모습은 믿음을 배움의 형태로 나타내고 잎만 무성하여 행함은 벌하심을 두려워하는 자기 안에서 강압과 억지로 이뤄집니다 모든 천지만물을 창조 하시고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생명의 구원을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하찮은 물질로 성취해 내지 않으시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육체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완성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 안에서 십자가의 도의 실재가 희미하고 믿음으로 행함에 있는 생명의 모습이 아직 보이지 않을지라도 낙심치 말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다릴 것입니다
아브라함 집에 이삭과 이스마엘의 관계처럼(갈4:29-30) 아직은 믿음의 실재가 어린 아이와 같고 몸에서 나타나는 가시적 행함이 더디 나타날지라도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신 사실 속에서 장차 주께서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도 그와 같을 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신 아들의 증거를 소망의 믿음으로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2-3)

그러므로 번제물 사이를 하나님 홀로 지나 가시며 사람의 의지와 상관 없이 이루어 내실 구원의 횃불 언약(창15:17)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육체로 오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서 우리 몸의 구속을 위한 믿음의 선물(엡2:8)과 하나님의 열심(고후11:2)이 이루시고 필하시고 끝내실 것입니다

*믿음의 행함과 실재적 경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려고 하면 할 수록 시퍼렇게 살아 있는 나를 보게 되고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고 하면 할 수록 죽은 나사로의 썩은 모습으로 드러나는 나를 보게 됩니다
내가 믿음으로 행하려 하면 할 수록 불순종한 죄만 드러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분노와 수치만 더합니다
그럴 때마다 육은 수에 칠 가치가 없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임을 깨닫게 되고 어쩔 수 없이 흙에 불과한 피조물의 정체만 폭로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목이 잘린 뱀처럼 이미 죽은 허상의 육체로 꿈틀대는 나(육)에 대하여는 이미 죽은 자가 틀림 없으며 육체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 생명의 실재를 사는 그(고후12:2)는 산 자가 맞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롬6:11)

생명의 실재를 사는 자녀들은 "믿음의 행함"을 육체의 행위로 고민하지 않고 생명을 이루는 일(믿음.행함)에 전력하여 이를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의로 여기심을 받는고로 실재하는 믿음 안에서의 행함은 거짓이나 방종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후5:6-9)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의 실재가 능력이 되어 영적 믿음의 행함으로 나타내심을 입은 자녀들은 생명의 안식처에서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 같이 자기 일(정과욕심)을 쉬는 안식에 있고 그들이 찾는 말씀은 멀리 있지 않고 심히 가까이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 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롬10:5-8)

*믿음의 행함과 결과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9)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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