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물과 열심

peter(peter) 2019-01-21 03:31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6:28-29)
하나님의 아들로 보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믿음)과 아는 일(행함)에 하나 되게 하심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거져 주신 믿음의 선물과
성령의 열심 있는 행함을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서 은혜와 진리로 찾아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행함은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믿음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택하신 자녀에게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
행함은 생명나무에 붙은 믿음의 가지에서 절로 맺는 열매로써 이는 농부의 열심이며 가지의 수고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육신의 일이 아닌 영적 행함에 있으며 이 또한 은혜로 행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지혜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15:4)
믿음은 믿음의 가지가 예수 나무에 붙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를 사는 삶에 있으며
행함은 예수 나무에 붙은 믿음의 가지에서 절로 맺는 성령의 열매에 있습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약2:22)
사람이 육적 돌감람나무로 자기를 소멸해 가며 그리스도라 하는 영적 참감람나무의 접붙임을 받아 그 영의 진액을 먹고 “그리스도와 합한 자는 한 영이라”하신 비밀을 힘써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5:31-32)
생명나무에 접붙임을 받은 선악을 알게 하는 가지의 기운이 마르고 존재가 죽어야 생명나무의 생기가 들어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나기 위해 나의 죽음은 필연적인 일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거듭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선물로 그 나라를 볼 수 있게 하셨고 (요3:3)
하나님의 열심으로 행하여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요3:5)
이는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져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 있는 믿음의 선물과 행함의 열심이 성령을 따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진 만큼 내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사시므로 나는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머리로 주신 믿음은 단회적인 것으로 이미 이루어진 사실에 있고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 사는 자의 행함은 지속성으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담아내기 위하여 나의 가치는 날마다 부인되고 죽어져서 아직도 우주의 찌끼로 남아 있는 육의 잔재를 온전히 비워내야 할 것입니다

생명을 위한 하나님 창조의 경륜은 가시적이며 육적인 물질계의 옛 창조로부터 시작된 첫 것을 폐하시고 보이지 않는 영적인 둘째 것으로 생명을 위한 새 창조의 일을 시작 하셨습니다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보이는 것은 잠깐 있을 육적 옛 창조이며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영적 새 창조입니다
십자가에 주의 죽으심과 부활 하심에 연합하여 거듭난 영적 새 생명을 사는 것은 보이지 않는 약속과 증거를 믿음으로 받아서 더 나은 생명의 본향을 향해 믿음에 길 떠나는 아브라함의 신앙 여정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를 가다가 강도 만나 피 투성이가 되어 죽게 된 자는 형벌의 중한 죄짐을 벗을 때가 된 내 옛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눅10:30)
강도 만난 자가 보일 수 있는 유일한 믿음은 사마리아인을 향한 절대 의존적 존재가 되어 가난하고 애통하며 주리고 목마름으로 죽은 자와 방불한 자신을 드러내어 절대 은혜에 자신을 맡기는 것 뿐이며 또한 은혜를 입은 그가 보일 수 있는 유일한 행함은 구원의 은혜를 진리로 선전하여 다시 만날 그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판 것을 뉘우치며 피 밭에 묻힌 가룟 유다의 죽음은 곧 내 육의 정체와 같습니다
자신이 흙에 속한 피조물임을 잊고 하나님을 배반한 불 순종도 모자라 자기를 살리시려 오신 구원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그 패역함은 스스로 살기를 포기한 가룟 유다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와 함께 구주의 피 값으로 사서 나그네의 무덤이 된 피 밭은 이 땅에서 약속과 증거를 가지고 행인과 나그네로 살다 가는 이들의 육신을 위한 무덤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를 통한 의의 말씀을 경험한 하나님의 자녀는 결코 자기 의지와 공력으로 피 값을 탕진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기 의에 열심 있는 육신의 행위를 쳐서 복종시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9:23))

그러므로-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3:3) 하심 같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녀에게 하나님의 선물과 열심은 내 안에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이루시고 끝내실 것이므로 사람의 열심과 성과로 내세울 일이 전혀 없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
오직 생명을 위해 낮아지고 무익함에 죽은 흙의 자리에서 아들의 생기를 받아 거듭날 것이며 이후로는 오직 내 안에 사시는 예수만 존귀히 되는 것으로 기뻐 할 것입니다

세상이 나를 대하여 내가 세상에 대하여 죽은 자를 세상이 볼 때에는 하나님께 열심 잃은 나태한 자로 여기고 혈육에 함께 속한 자녀들은 세상의 정죄와 핍박에 굴복하여 때때로 잘린 뱀의 꼬리처럼 이미 죽은 자기 의지를 다시 부추겨서 헛된 열매를 위해 애쓰던 날도 많이 있었습니다
집요한 사람의 의는 사람의 열심을 독려하여 하나님의 영광보다 육신의 번영과 부흥에 가치를 두고 이러한 자기 구원의 욕심을 하나님의 열심이라 말합니다
-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갈4:17)

십자가 위에서 이미 다 이루었다 하신 사실은 그리스도의 머리로써 단회적이며 단번에 주신 믿음 안에 있어서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일을 쉬심 같이 자기 일을 쉬는 영원한 안식이 이루어진 것입니다(히4:10)
또한 주님의 형상을 본받아 행함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는 믿음의 실상을 이루어 가는 지속성에 있으며 이는 그리스도의 남은 안식을 주의 몸된 교회에 두고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신 아버지의 뜻을 이룸과 같습니다
그리스도는 완성이며 교회는 미완성일 때 그리스도와 교회가 합하여 하나되면 완성을 이룹니다 따라서 교회가 그리스도와 떨어질 때 마다 다시 죄로 나타나기를 반복하여 교회가 늘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위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 능력의 자리로 돌아가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4:11)

영문 안에서 기적과 병 고침으로 기뻐하고 오병이어로 배 부르며 죽은 자를 살리시던 부흥과 번영의 순간들은 지나가고 인적도 끊기고 아버지마저 외면하신 영문 밖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세상 영혼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요16:32)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인바 되었던 육신의 본향엔 인생의 병 고침과 번영과 배부름이 있고 기적과 은사와 표적이 따랐으며 자기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살 만한 세상을 환영하여 오히려 예수 밖에서 자기 육신의 빗장을 굳게 닫고 십자가를 원수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웃을 위한 자선으로 선행의 공덕을 세워 자기 마음에 위안을 받고 인생의 가치와 행복을 더 하고자 애쓰는 것은 타 종교에서 더 열심 있는 일들이며 이는 사람의 의에서 비롯된 자기 수련을 위한 일 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 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19:3)
결코 선행과 구제와 열심이 무용하다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사회의 유익을 위해 사람이면 당연히 지키고 행하여야 할 윤리적 규범과 예법들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이웃의 유익을 위해 나를 불사름 가운데 드려 세운 공력이 하나님 앞에서는 오히려 육신의 일과 불법을 행하는 자로 나타나 이러한 것이 결코 구원의 본질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3)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리스도인이 이웃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하며 병든 자를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오히려 외적 거룩함에 치중하여 스스로를 억제하며 나의 아픔과 사정을 주께 고하지 못하는 것도 강도 만난 자로서의 은혜를 망각하고 육신은 벗었다 하나 아직도 율법의 눈치를 보며 진리 안에서 온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 옵소서”
자녀는 주 안에서 자유하여 항상 진리로 구하기를 힘쓰고 그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면 그것이 응답이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원임을 깨달아 알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죽은 영혼을 살리시고 영육 간에 병든 자를 고치시며 환란에서 평안으로 피할 길을 주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여전히 질병과 고통을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나님의 공의하신 사랑은 나의 원대로 아니하실지라도 여전히 하늘 영광 중에 살아 역사하시며 때때로 자녀의 눈물을 외면하시고 안 돌아 보시는듯 하여도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나의 등 뒤에서 나를 지키십니다 나의 원하는 형통의 길을 아니 주실지라도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보배로운 믿음은 결코 나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 흔들릴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전쟁과 수 많은 죽음이 욕심에 굶주린 인간의 손에서 거리낌 없이 자행 된다고 해서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니며 병 고침과 기적과 표적이 있는 곳이라 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계신 것도 아닙니다 오직 사람이 하는 일과 하나님의 일이 다를 뿐이며 표적과 기적은 다른 종교와 귀신들도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 여정에 유익을 위해 주어졌던 표적과 기적과 은사 역시 의의 말씀이 경험되기 전까지 필요했던 것으로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과정으로 지나갈 것입니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전13:10)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13:8)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의 심정과 같이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를 찾는 아들의 외침마저 침묵하셔야 했던 하나님의 공의하심은 택하신 자녀들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스스로 아들의 양 손과 발에 대못을 박아야 했던 아버지의 아픔이셨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물 위를 걸으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으며 소경과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주린 백성을 오병이어로 먹이신 일들이 구원의 본질이었다면 오늘날 이 땅엔 죽음과 질병과 기아가 그쳤을 것이며 주님께서도 십자가에 죽으실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러한 표적과 기적을 보이신 것은 믿지 못하는 세상을 향해 그가 친히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어 자기 백성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한 방편이었음을 성경은 밝히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그러므로 정작 영혼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실 때에는 모든 표적과 기적도 그치고 예루살렘 안에서 그의 능력을 환호하던 수 많은 인파의 그 인적마저 끊긴 골고다의 진실을 바라보면서 진정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9)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녀들은 결국 자신이 쌓은 옛 사람의 성전에서 무너짐이 당연한 일이며 이는 구약을 통해 소돔과 고모라,여리고와 바벨론의 역사를 통해 이미 보이셨습니다 사람이 자기 의로써 최선의 노력을 다해 세운 바벨탑은 높이 쌓을수록 무너지기가 쉬운 법입니다 그러므로 새 생명을 얻기 위하여 믿는 자의 고난으로 주신 옛 사람이 무너짐을 두려워 말고 오히려 고난을 감사와 기쁨으로 여기며 피로 맹세하신 아들에 관한 증거와 약속의 유익함을 배워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의 생명만이 내 안에서 나타내심을 소망 중에 바라보며 기뻐할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

천지를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물질에 부족함이 있으셔서 자녀에게 치성적인 열심과 물질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 백성을 썩어질 물질로 시험치도 않으시며 자녀들은 주실 복을 기대하고 시험하며 예물을 드려서도 안됩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부분적인 것을 드리거나 외식하는 자들의 십의 일을 원치 않으시고 아들의 속전으로 산 생명의 전부를 원하심을 간과치 말아야 합니다 천국은 내 육의 전부를 팔아야 살 수 있으며 하나님의 집은 썩을 양식을 쌓는 곳이 아니라 썩지 않을 생명의 양식으로 채워야 하며 이 양식은 고아와 과부와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과 나누어야 할 영의 양식과 생수입니다

때때로 거듭남에 있다 하는 이들이 범하는 오류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갈2:17)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은혜의 무게가 너무 가볍다고 여기면서 그 은혜에 무언가 자기의 노력과 수고를 보태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보다 나은 거룩함을 보이고자 애쓰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율법적인 의가 그것 입니다
예수께서 시험의 광야에서 우리를 위해 주리시고 목마름으로 생명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기뻐하신 금식은 간과하면서 이레에 두번의 금식을 더하여 정하신 율법에 자기 의를 보태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롬11:6)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선물과 열심을 호도하여 그 은혜의 자유를 교만과 방종으로 게을리 행하여 진리의 집에서 멀리 떠나 있는 탕자의 삶을 자유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 또한 자기를 부인 못한 혈과 육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 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이와 같이 죄 사함을 받은 자녀들에게도 아직 몸의 구속을 훼방하는 육의 잔재들이 남아 있기에 하나님의 영으로 애굽의 장자(첫사람)들과 아말렉(육)을 남김없이 도륙하며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을 부끄러워 말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놓아 버리면 결국 세상을 쫓아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 상태에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자체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며 자녀는 여기서 강도 만난 자로 죽을 수 밖에 없는 흙의 본질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아를 자각하고 하나님 절대 의존적 상태가 되어진 내게 보여지는 가시적인 열매를 볼 수 없다 해서 불안해 하거나 낙담할 일은 결코 아닙니다 불안과 염려마저 사람이 자기를 채우지 못한 욕심의 발로일 뿐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는 나를 기대하는 자체가 죄만 드러 날뿐 소망 중에 약속을 의지하여 참음으로 몸의 구속을 기다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2-3)

비록 아직은 거듭난 영이 장성치 못하여 몸의 습관과 행실이 허물로 남아 있아 있을지라도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3:4) 하신 약속을 의지하여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하셨으니 오직 알파와 오메가 되시며 처음과 나중 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 안에 살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