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서 제4부
blue(blueqsam) 2010-03-14 08:21
유다서 제4부
2. 개인적, 11-16
11 :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12 : 저희는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13 :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14 : 아담의 칠 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 :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16 :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1) 3 개인
단체적 이단을 3 단체로 보인 후 개인적 이단도 3 개인으로 알려 주엇다
(1) 가인의 길
가인의 죄는 불 신앙 이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히 11 : 4 ) 하였다.
아벨은 믿음으로 양을 잡아 그 피로 재물을 드렸다.
곧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창 4 : 4 ) 라고 기록 되었다.
아벨의 제사를 믿음의 제사라고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 담과 하와가 범죄 후 하나님이 그들을 찾아 문답하신 후에 양을 잡아 피를 흘리고 그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히셨다 (창 3 : 31 ).
양을 잡아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심은 장차 메시야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속죄의 양으로 죽으실 일과
사유하심을 얻을 피의 약속 이었다.
이때부터 구약 시대 4 천년 동안 소와 양을 잡아 제사 하였고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가 피 흘려 죽으심으로 피의 제사는 완성 되었다.
그리하여 구약 (옛 계약) 은 짐승의 피로, 신약 (새 언약) 은 예수의 피로 속죄 되었다.
가독교는 성경을 둘로 나누어 구약, 신약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피의 언약, 피의 계약이라는데서 온 것이다.
예수께서 잡히시던날 "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눅 22 : 20 ) 고 하셨다.
피는 죄 사유함을 얻게 한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이와 같이 아담에게 약속 하신 양의 피와 기름으로 제사하는 뜻을 이어
구약 4 천년 동안을 짐승의 피로 제사하여 오다가 예수가 피흘려 죽으심으로 완결 되었다.
그러므로 양을 잡아 제사 함은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회개하며
장 차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자기 죄를 대속함이라고 믿으면 사유함을 얻어 구원에 이른다는 것을 믿는 일이다.
다시 요약하면 회개와 신앙의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가인은 그의 양친 아담과 하와의 모든 일을 다 알고 하나님과 대화도 하면서 회개와 복음 신안의 중심인 양을 잡아
제사 하지 아니 하였으며 그 하나님의 약속 (가죽옷은 예수 공로의 옷 )을 믿지 아니하고 자기 생각대로 일하여 얻은 물질로
제사를 하였으니 회개와 믿음의 제사가 아니었다. 이로 인하여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다 (창 4 : 3-5 ).
그러므로 가인의 길은 회개와 복음의 신앙이 없는 잘못된 믿음이었다.
회개와 복음 신앙이 없는 이것이 가만히 들어온 이단자들이 걷는 가인의 길이다.
다시 말하여 회개와 속죄의 믿음이 없이 인간적인 교회 사업 활동을 하나님의 복음 운동으로 아는 자들이 바로
가인의 길을 걷는 이단 이라는 말이다.
오 늘날 교계에 회개할 죄를 그대로 가지고 회개 하지 아니하며 정치적으로 활동 하는 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아벨은 신앙가요, 가인은 종교가이다.
어느 때나 신앙가는 종교가 들에게 핌박과 죽임을 당한다.
가인 같은 종교가 들은 회개 하지 아니하며 시기와 분노를 가지며 사랑하는 척 수작하다가 기회만 되면 쳐 죽이고
무책임 하여 저주를 받는다 (창 4 : 1-11 ).
이는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믿지 않고 자기 소견대로 믿는. 양을 잡아 재물로 드리지 않고 농산물로 제사를 드리는
자들의 불행한 길이다. 회개와 믿음이 없는 자가 화 받을 이단자라는 말이다.
(2) 발람의 어그러진 길
발람은 물질과 명예를 따른 이단 이었다. 그 불의한 목적을 위하여 많은 죄를 범하여 간교한 자로 마침내 멸망 하였다.
그는 메시야 나실 때 별이 나타날 일을 예언 하였으며 (민 24 : 17 ),
이 방왕 발락에게 가서 일곱 노래를 지어 (민 23 : 7-10, 18-34, 24 : 3-9, 15-19, 20, 21-22, 23-24 ) 훌륭한 예언을 하였다.
그러나 원통하게 재리와 명리에 유혹 되고 말았다.
우리는 이 발람에 대하여 세밀히 알아야 한다. 먼저 그가 발락왕에게 가기 까지의 일을 민수기 22장 에서 본다.
발락왕의 사자들이 제일 처음 그에게 왔을 때에는 복술의 예물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 하라고 하였다.
이때 발람은 욕심에 마음이 흐려져 그들을 집안에 유하게 하고 하나님께 물어 보겠다고 대답하였다.
잘 분별할 수 없을 때에는 물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 하라고 돈을 가져온 자들을 집안에 유하게 하면서
가장 하나님의 거룩한 종처럼 시키는대로 순종 하는척 물어 보겠다고 함은 매우 간사하고 교활한 일이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렵게 될 일을 개의치 않는 심사이다.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한 이 사람들이 누구냐" (민 22 : 9)고 엄히 물으셨다.
이미 탐심에 화인 맞은 그는 회개는 하지 않고 하나님이 몰라서 물으신 것같이 태연히 설명을 하고 있었으니 (10, 11)
가증의 극이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 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을 자니라" (민 22 : 12)고 명확히 지시 하심으로
발람은 갈 수가 없었다.
발락왕은 두번째로 더 높은 귀족들을 많이 보내어 발람이 와서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 하면 그를 촢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무슨 말이든지 다 시행하겠다고 하였다 (민 22 : 15-17).
발람은 말로는 그럴싸하게 "발락이 그 집에 은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 어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민 22 : 18) 하였다. 그러고는 또 하나님께 알아 보겠다고 집에 유하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하나님이 이르는 말만 준행할 것을 주의시켜 가는 것을 허락하셨다 (20).
여기서도 우리가 크게 주의할 일은 처음에 가지 말라고 하셨으니 두번째로 다시 물어볼 필요도 없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속에 있는 탐심이 그의 길을 재촉 하였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 인간이 기어이 고집하는 일을 조건부로 허락 하시기도 한다.
즉 내버려두심이다.
이런 허락은 불행하다. 발람이 얻은 허락은 죽으려 가는 길이었다.
발람은 아침에 일어나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귀족들과 함께 행하였는데 하나님이 진노 하셔서
사자를 보내 그 길을 막으려고 길에 서게 하셨다.
하 나님의 사자의 손에 칼을 빼어 들고 있음을 나귀가 보고 길에서 떠나 밭으로 들어 갔다.
발람은 탐욕에 눈이 어두워 짐승 나귀가 본 천사를 볼 수가 없었다. 도리어 나귀를 채찍질 하여 길로 돌이키려 하였다.
나귀는 좌우 담에 발람의 발을 비비어 상하게 하니 발람은 더욱 채찍을 가하였다.
이때 하나님이 나귀의 입을 열어 발람을 책망하게 하셨다 . 또한 발람의 눈을 밝히심으로 그가 사자를 보고 머리 숙여 엎드렸다
천사는 "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네 길이 내 앞에 패역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민 22 : 32-33 ) 고 발람을 책망 하였다
이때에도 발람의 말은 참으로 가증하고 간교 하였다.
그는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민 22 : 34 ) 라고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 하는 것처럼 대답하였다.
여호와의 사자는 발람에게 여호와의 이르는 말만 하라고 하여 가게 하였다.
발람은 발락왕에게 가서 존귀와 재물을 얻게 되었고 성연을 베풀어 환대를 받을 때에도 여전히 자기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만
할 것이라고 명언 하였다 (민 22 : 21-40 ).
여기서 우리는 발람의 모습을 여러 가지로 볼 수 있다.
목적이 이루어 질것으로 알고 아침에 일어 난일,
나귀가 볼 수 있었던 사자를 물질에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한일,
나 귀를 채직과 지팡이로 때리며 칼이 있었더면 나귀를 죽였을 것이라고 한 일,
기뻐 하지 않으시면 돌아 가겠다고 말한 일,
하 나님의 말씀만 하겠다고 선언한 일, 이 일들에서 그의 성격이 엿보인다.
사람이 기쁜 일이 있으면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일임에도 불구 하고 자기의 욕망이 이루어 졌다고 생각하여 아침에 일어나 안장을 지우고 출발을 서둘렀다.
사람이 지위와 물질에 타락하면 눈이 어두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 유명한 예언자가 나귀가 본 사자를 보지 못했다. 청결하고 성결한 자라야 눈이 밝아진다.
또한 발람이 나귀를 때리고 분내며 칼이 있었드라면 죽일 마음이 가득 했으니 타락된 자들의 모습이다.
자기 부족은 알지 못하고 주인의 생명을 보호 해준 나귀를 도리어 때리고 책망하며 분내어 죽이려 했다.
짐승 나귀에게 사람이 책망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불 칼을 들고 선 사자를 보았고 패역한 길이라고 사자에게 책망을 들었으니 더 물어 볼 필요 없이 돌아 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교활하게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것처럼 기뻐하지 않으시면 돌아 가겠다고 대답하였다.
끈질기게도 그 어그러진 길에 연연하였다.
그리고 공중석인 제단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므로 발락와의 문책을 받았다.
그러나 사석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게 되는 비결을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우상의 재물을 먹게하고 행음하게 하였다 (계 2 : 14 ).
이로 인하여 염병이 발하여 이만 사천 명이나 죽었고 크게 패하였다 (민 25 : 1-9, 31 : 16, 고전 10 : 8 ).
발람 자신의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일을 망치고 또 죄를 짓게 하며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다.
발람의 태도는 공석과 사석에서 완전히 달랐고 그의 말과 속 마음이 전혀 달랐다.
이런 일들이 이단자들의 특성이요 속성이며 생태이다.
발람은 발락왕의 원을 이루어 주고 자기의 물욕을 채우며 하나님의 일을 무너지게 하였다.
그러나 그의 꿈은 깨어지고 미디안에서 이방 사람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여 들에 시체가 딩굴었다.
이것이 돈을 탐하는 이단자들의 말로이다 (민 31 : 8 ).
베드로 사도는 발람의 길을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 (벧후 2 : 15-16 ) 고 기록 하였다.
사도 요한은 버가모 교회 사자에게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계 2 : 14 )고 하였다.
바울은 "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고전 10 : 8 )고 하였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도륙하는 중에 브올의 아들 술사 발람도 칼날로 죽였었더라" (수 13 : 22 ) 고 전하였다.
이 말세에는 발람의 후예들이 많을 것이다.
(3) 고라의 패역
이단자들 은 패역 곧 부인 하는 배반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저들은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고,
믿지 아니하며,
자 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처소를 떠나는 자들이며,
남녀가 각기 자기의 지킬 것을 떠나 간음과 다른 색을 따른다.
이 사람들은 원망과 불평과 자랑과 아첨을 한다. 그리고 당을 짓는다.
그리하여 패역의 길을 가다가 망한다.
고라는 모세의 사촌이다 (출 6 : 16-21 ).
그는 하나님이 모세를 세우신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명리를 위하여 모세를 거스렸다.
그는 모세의 자리를 빼았고자 하여 패역하였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랍과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족장 이백 오십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렸다 (민 16 : 1-2 ).
그리고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 (민 16 : 3) 라고 하였다.
그들은 여러가지 당연한 이유를 들어 제의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같은 레위 자손이요 자기들이 더 똑똑한 것으로 자인하고 모세는 말이 어눌하여 그의 형 아론이 대언 하였으니
그들의 비웃음을 받음직도 하다.
그리고 이스라엘 무리의 유명한 족장들이 이백 오 십명이나 동조 하여 고라당에 입당 하였으니
고라가 모세보다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 할 수 있었다.
모세와 아론 두 형제 만이 제일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 하면서 그들을 증오 하였는지도 모른다.
다만 저들이 모세는 하나님이 택하여 세우신 사람 임을 깊이 알았어야 했고 자기들의 채역하는 성격을 반성하여
시정해야할 것을 하지 않았다.
모세가 다단과 아비암을 불렀을때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 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민 16 : 12-14 ) 고 하였다.
그리고 이백 오십 명은 자기들대로 자신을 가지고 모세와 아론을 상대하여 회막문에 서서 대적 하였다.
결국 그들의 밑의 땅이 갈라져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고
산채로 음부에 빠져 망하였다 (민 16 : 12-35 ). 이같이 가만히 들어온 이단자들은 항상 패역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은 겸손과 순종의 사람들이며 윤리를 지키는 사람들이다.
옛날 어린 사무엘은 늙은 타락된 선지자 엘리에 대하여 하나님이 버리신다는 지시가 직접 있었으나
늙 은 선지자에게 윤리를 잃지 않았다 (삼상 3 : 1 ).
다윗은 불레셋 장군 골리앗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구원한 후 사울왕이 시기하여 죽이려 하였을 때 피하여
앤게디 항무지 굴속에 숨어 있었다.
다윗을 쫒던 사울왕은 그 굴속에 다윗이 있는지를 모르고 들어갔다. 이때 다읫은 이미 기름부어 왕이 된 후였다.
다윗과 함께한 사람들이 사울을 죽이기 원하였으나 다윗은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삼상 24 : 6 ) 고 금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울의 겉옷자락을 벤 일로 인하여 다윗을 마음에 찔림을 받았던 것이다.
사울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굴에서 나왔을 때 다윗은 그 뒤를 따라 나와 엎드려 절하며 존경과 사랑으로 호소 하였다.
그리고 자기를 죽은 개나 벼룩 같은것 이라고 겸손히 말하였다.
사울은 그의 선배요, 하나님이 세워 기름부은 왕이었기에 타락하여 하나님과 사무엘이 다 버리고 떠난 후의 그였지만
윤리를 지켜 하나님께 맡기도 마음과 말과 행위로 거스려 패역하지 않았다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지게 한 다리오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굴로 갔다. 그리고 다니엘의 안부를 물었다.
다니엘은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단 6 : 21 ) 라고 하였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도 자기들을 칠배나 뜨거운 불에 던진 느부갓네살 왕에게 그 왕권을 무시하지 않고 경건히 대하였다 (단 3 : 13-30 ).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빋으려 하실 때에 요한은
"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마 3 : 14 ) 하여 황송히 여겼다.
예수 께서는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마 3 : 15 ) 하셨다.
세례 요한은 황송하나 예수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이는 다른말로 하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이다.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심이 모든 의라 하셨으니 이 뜻은 구세주요 하나님이신 예수일지라도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의 직권을 존중히 여기며 선배격인 세례 요한에 대하여 윤리를 지키심이었다.
그리고 세상 죄를 담당한 예수는 죄인들이 받는 세례를 받으셔야 했다.
세례 요한에게 윤리를 지켜 의를 이루신 일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구약과 신약시대를 막론하고 올바른 믿음의 성도들은 패역하지 않고 오히려 순종하는 윤리의 사람들이다.
본서중 미가엘 천사장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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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희의 생태
유다는 구약의 이단인 3 단체와 그들의 생태를 말한 것 같이 구약의 이단인 3 개인도 그 생태를 여섯 가지로 말하였다.
그들은 애찬의 암초,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
물 멊는 구름,
완전히 죽은 나무,
수치의 거품을 뿜는 거친 물결,
유리하는 별이라고 하였다.
(1) 애찬의 암초
암초는 가만히 들어온 자들의 성격을 뜻한다, 바다 속에 없는 것같이 숨어 있는 바위이다.
지나는 배들이 암초에 부딧쳐 파선 하여 생명과 재산을 잃는다.
이 세상은 고해이다.
이 바다에 교계의 위선자들이 있어 그들과 부딪치기만 하면 많은 손실을 당한다.
여 기서는 애찬의 암초라고 하였다.
애찬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이다.
그리고 회개하지도 않은 자들이 학습과 세례를 받고 중직을 맡으며 교역자가 되었다면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자들이요
가만히 숨어 있는 바위 곧 암초이다.
교회는 다 좋은 줄로만 알고 다니다가 그런 암초에 걸리면 재산과 생명 까지 파손을 당한다
화있을 회칠한 무덤과 평토장한 무덤은 이 암초를 말하는 것이다.
현대 교회 안에 많이 있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음식을 맛있게 먹는 중에 냄새가 고약한 돌을 씹게 되면 그 악취로 인하여 음식이 맛이 없어진다.
그래서 입안의 음식을 모두 뱉게 됨과 같다.
성도들이 진리 안에서 기쁘게 교제하는 가운데 가만히 들어온 자들은 암초가 되어 분위기를 해치며
잘 되어가는 교회의 일들을 다 와해시킨다.
교 회 생활에서 은혜가 없으며 건설적이 아닌 항상 파괴하는 일을 한다.
이것이 암초의 생리이다.
베드로 사도는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 (벧후 2 : 18 ) 라고 암초를 풀이 하였다.
암초는 앞에서 말한 그대로 회개하지 않고 일하는 자들이며 또한 교회 안에서 틈을 보아 자기 욕망을 이루려 하는 자들이다.
기탄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 기탄 없다는 뜻은 교회에서 같이 일하며 사는데 거침없이,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암초 노릇을 한다는 말이다.
남보다 더 열심히 돌아 다니며 하나도 거리낌 없이 행동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은 항상 조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자기를 고백하고 다른 이를 손해나게 하지 않는다.
언재든지 자기를 희생하여 다른 이를 유익 케 한다.
[주] 12절 애찬의 "암초"인 "스필라스"는 숨은 바위이지만 한 점을 뜻하기도 한다.
즉 성도들의 애찬의 암초도 되며 더러운 점 같은 존재도 된다는 말이다.
(2)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
구역에는 "두려움 없이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 라고 하였다
하 나님의 종인 교역자 곧 목자가 하나님과 진리를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충성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기와 자기 가족을 위한다는 말이다. 참으로 두려움이 없는 자들의 행동이다.
이들이 바로 가만히 들어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며 신본주의에서 떠나 인본주의에 사는 암초들이다.
저들이 지위와 위치를 망각하고 떠나 행음하며 꿈꾸며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고 영광을 훼방하는 이성없는 짐승들이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바울은 이같은 자들을 개들이여 행악하는 자들이며 손할례당이라고 하였다 (빌 3 : 2 ).
또 십자가를 전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다고 말하였다.
저희는 배로 하나님을 삼고 부끄러움으로 영광을 삼으며 땅의 일만 생각하는 자들이다 (빌 3 : 18-19 ).
이 사야 선지자는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사 56 : 11 ). 라고 하였다.
에스겔은 이들을 가리켜 말하기를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겔 34 : 2-3 ). 하였고,
자기 몸만 기르는 여선지자를 향하여 "너희가 두어 웅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 을 곧이 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서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 (겔 13 : 19 )
라고 책망 하였다.
야곱의 두령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들에게 미가 선지자는
"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좋아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남비와 솥 가운데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미 3 : 2-3 )라고 했고
또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미 3 : 5 )라고 하여 지기 몸만 기르는 목자들에 대하여 말하였다.
본서의 발람같은 자들이다.
참으로 두려운 일은 구약 4 천년간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 수의 비율이다.
아합왕때 바알에 무릎 꿇지 않은 숨겨둔 성도 7 천명이 있었지만 선지자로는 엘리아 한 사람에 대하여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850 명이었고 바른 영감을 얻은 미가야 한 사람외에 거짓 영으로 예언한 선지자들이 4 백명 이었으니 말이다.
비단 이 뿐아니라 참 선지자 이사야, 예레미아 및 모든 참 선지자들의 때에도 하나님께 충성한 선지자는 적고
하나님께 충성 한다고 하면서 자기 몸만 기르는 두려움니 엄ㅅ는 강도와 도적들이 얼마나 더 많았던가 ?.
예루 살렘 종교계의 지도자들이 거의 그러하였다. 떨리고 두려운 일이다.
우리는 정신 차려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가 되지 말고 또 그런 목자들의 먹이가 되지 않아야겠다.
오직 하나님이 세우신 목자가 되며 참 목자를 알아 물질과 마음과 생명을 드려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여야 할 것이다.
(3) 물없는 구름
구 름은 공중에 높이 떠서 모든 사람에게 보이어 알게 된다.
이것은 교계의 지도자들이 높은 지위에 있어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 있음을 뜻한다.
바람에 불려간다고 함은 이 새상 풍조에 밀려 다닌다는 말이 된다.
임기 응변하는 기회주의자이며 팔방 미인격으로 지조가 없이 바람주는 대로 불려 다니는 것이다.
지위와 명예와 부귀 공명과 권세의 바람에 불려 다니는 것이다.
생명이 없는 태산은 물 흐르는대로 떠내려 가지만 생명이 있는 물고기는 물살이 거센 흐름에도 자의의 물줄기를
거 스려 오르기도 하며 횡단 하기도한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는 지도자라도 가만히 들어온 자들 즉 육에 속하여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자들은
세상의 부귀와 공명과 권세의 바람에 불려 다니게 된다.
바울은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엡 4 : 14 )고 하였다.
또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악하고 음란하고 패역하여 사특한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며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 하신 뜻이 무었인지 분멸하며 산다 (롬 12 : 1-2 ).
3 개인은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라고 하였다. 구름은 구름인데 물없는 구름이다.
사람들과 생물들에게 아무런 해갈도 주지 못한다.
이단자인 교역자가 교계의 높은 지위에 있어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며 은혜를 기다려도 은혜를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이 마무리 외쳐도 생명수는 없다.
약 간의 인간 지식과 잘못된 신비와 인간의 감정을 격화 시키는 것들로 신자들의 지성과 감정을 움직였다 하여도
그것은 생수가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죽이는 쓴 물이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골 2 : 8 ) 고 하였고
또 그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딤후 4 : 3-4 )고 말하였다.
그리고 잘못된 신비를 가진 이단이 있을 일에 대하여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딤전 4 : 1 ) 고 하였다.
이상과 같이 외치는 자들이 물 없는 구름이라는 말이다.
그 러면 여기서 물이라는 것은 무었인가 ?.
물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 4 : 10 ), "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 : 14 )고 하셨다.
그리고 요한 사도는 "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7 : 38-39 ) 고 밝히고 있다.
사도행전 기자는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행 10 : 44 ),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행 11 : 15 )고 하였다.
누가는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눅 24 : 32 ) 라고 하던 엠마오의 두제자 말을 알리고 있다.
사도 요한은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 22 :1-2 ) 하였다
또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계 21 : 6-7 ) 고 하였다.
솔로몬은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아 4 : 15 ),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아 4 : 12 ) 라고 노래 하였다.
이상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주시는 생수에 대한 말씀이며 그 생수를 받은 성도들에 대한 말씀이다.
참 종들은 이상과 같은 물 곧 말씀과 성령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여 그들의 생명을 윤택하게 한다.
그 러나 가만히 들어온 이단자들이 주는 물은 독초요 쓴것이며 생명을 손상 시키며 죽음에 이르게한다
(신 29 : 18, 사 51 : 17, 21, 렘 9 : 15, 암 6 : 12, 히 12 : 15 ).
베드로 사도는 유다와 대조적으로
"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 (벧후 2 : 17 ) 라고 표현 하였다.
이를 모두 종합해 보면 물 없는 샘은 제일 낮은 곳이며 밀려가는 안개는 조금 높은 땅 위나 산기슭이고
물 없는 구름은 더 높은 공중이다.
이 입체적인 3 단계 모두가 물이 없는 이단자들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름만은 샘이요 안개이며 구름이다.
이들은 모두 물을 지녔어야 할 이름들인데 물이 없다.
생각해 볼 것은 물 있는 구름이나 물 없는 구름이 거의 같은 점이다.
이름이 구름이요 그 질이 같으며 태양 광선에 증발되어 구름이 된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아무리 물 없는 구름이라도 물 기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라 한 것은 이단자들이 세상 풍조에 밀려 다니기 때문에
참 된 진리로 생명을 윤택하게 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 한다.
그런데 그들도 참 종들과 거의 비슷한 상황에 있다.
즉 불신자가 교회에 나와 믿고 학습과 세례를 빋으며 집사와 장로와 목사가 되어지는 그 모든 경험이
참된 자나 잘못된 자나 같은 형식을 통과한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일들도 외적으로는 다 같은 일을 한다
오히려 가만히 들어온 이단들이 더 열심은 내어 일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들의 내용은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자기들 육신의 정욕을 이루는데 있다.
그렇 기 때문에 그들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리가 양의 옷을 입고 나타나는 그들의 겉 모양만 보고
참 종으로 알고 미혹을 받으며 속는 것이다.
그러나 물이 있는 구름은 참으로 귀한 신자 또는 귀한 종들이다.
저둘은 구름이 녹아 물이 되어 생명을 윤택하게 함과 같이 자기들의 명예와 재산을 희생하면서
말씀과 성령의 은사를 전하여 뭇 생명들을 살게 한다. 물론 하나님의 능력을 힘 입어서 한다.
이러한 물에 대하여 성경은 여러가지로 묘사하여 알려준다.
생수 (요 4 : 10 ), 영생수 (요 4 : 14 ), 샐수의 강 (요 7 : 38 ), 생명수 샘물 (계 21 " 6 ), 생명수의 강 (계 22 : 1 ),
생명수 (계 22 : 17 ), 봉한 샘/ 덮은 유물 (아 4 : 12 ), 동산의 샘/생수의 우물/레바논에서 흐르는 시내 (아 4 : 15 ),
소생시키는 물 (겔 47 : 8-9 ), 여호와의 전에서 흘러 나온 샘 (욜 3 : 18 ), 예루살렘에서 솟아난 생수 (슥 14 : 8 )
등으로 말씀하셨다.
이같은 좋은 물을 얻는 길을 알아보자.
첫째는, 죄를 회개함에 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수를 주시려고 하실 때 그의 남편을 불러 오라고 하셨다.
그 여인은 전에 다섯 남편이 있었으나 그 때에는 자기 남편이 아닌 남자와 관계를 하고 있었다.
회 개 함으로 그 여인의 속에 생수가 넘쳐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 예수를 증거 하였다.
그러므로 많은 사마리라 사람들이 믿어 구원을 얻게 되었다.
한 죄인의 회개로 얻어진 생수의 줄기가 사마리아 성에 흘러 들어가 그들의 생명을 흡족하게 하였던 것이다 (요 4: ).
둘째는, 예수를 참으로 믿는데 있다.
예수께서 친히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7 : 38-39 ). 고 요한이 증거 하였다.
셋째는, 성령 충만이 생수의 강이 된다.
넷 째는, 말씀이 성령을 임재케 한다. 엠마오 두제자들이 말한바와 같이
"우리 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눅 24 : 32 )는 말씀이다.
또한 고낼료 집에소 베드로가 밀할 때에 성령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셨다 (행 10 : 44, 11 : 15 ).
다 섯째는 "기도 드릴 때에 성령을 받게 된다 .
초대교회가 오순절에 성령을 받을 때 먼저 기도가 있었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행 1 : 14 )는
가록을 볼수 있다. 이와 같이 생수의 물을 얻는 길은 회개, 믿음, 성령, 기도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4) 죽은 나무
이 말씀은 가만히 들어온 이단자들의 다시 희망이 없는 절망의 상태를 말함이다.
나무가 한번만 죽은 것이 아니라 죽고 또 죽었다.
두번이나 죽었드라면 뿌리나 있었으면 희망이 있을 터인데 뿌리까지 뽑혀진 나무이다.
뿐만 아니라 나무가 두번 죽고 뿌리 까지 뽑혔어도 열매가 있었으면 그래도 희망이 있었을 것을 열매까지도 없다.
거기다가 봄아닌 가을 나무이니 북풍 한설이 나부낄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
참으로 희망이 전혀 없는 자들에 대한 심각한 표현이다.
그러면 죽고 또 죽음, 뿌리 뽑힘, 열매 없음, 가을 나무 이 네마디의 뜻을 더 알아야 하겠다.
죽고 또 죽어 : 이는 두번 죽음이다.
인 간들이 허물과 죄로 죽었다, 이것이 첫번 죽음이다.
그리고 이 첫번 죽었던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게 되었다가 거듭 범죄 하여 타락함으로 죽게 된 것이
그 두번째 죽음이 되는 것이다.
바울은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 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엡 2 : 1-5 ) 하여 죽었던 우리가 다시 살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히 6 : 4-6 ).
하여 은혜로 다시 살게 된 자들이 예전 생활로 타락하면 다시 회복의 길이 없고 두번 죽음이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는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 희에게 응하였도다" (벧후 2 : 21-22 ) 라고 하였다.
예수께서도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눅 11 : 24-26 ) 고 말씀 하셨다.
한번 은혜로 소제 되었던 자가 그리스도의 영을 마음에 모시지 않고 비워두면 일곱 배나 더 심하게 되어 희망이 없다는 말씀이다.
본 유다서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 4 ) 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타락한 자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죽고 또 죽은 사람들이라는 말씀이다.
뿌리까지 뽑힌 : 나무가 지상의 둥치와 가지는 죽었어도 뿌리가 살아 있다면 아직은 소생 할 희망이 있다 마는
뿌리까지 뽑혔다면 나무로는 완전히 죽은 것으로 살아날 희망이 없다.
가만히 들어온 이단들은 겉생활만 죄의 생활로 죽은것이 아니라 그 속마음도 죽어 생명이 없으므로 소생할 희망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시험에 드는 것이 아니라 육신도 마음과 함께 죄로 죽어 있다는 말이다.
바울의 말과 같이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 7 : 22-23 ) 하는 연약이 아니라
육신과 속사람이 다 죽어 희망이 없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단자들의 속에는 뿌리가 되는 그리스도의 영이 없어졌다는 말이 된다 (롬 8 : 9 ).
열매없는 : 역시 희망이 전혀 없음을 강조한 말이다.
나무가 죽었고 뿌리가 뽑혔더라도 열매만 있으면 땅에 뿌려 다시 생명을 이어 갈 것이다.
그러나 열매 조차 없으니 어찌 희망이 있을것인가 ?. 가만히 들어온 자들의 비운의 극이다.
사실로는 그들은 열매가 있을수 없다.
왜냐하면 씨가 떨어 졌으도 열매를 얻을수 없는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와 같기 때문이다. (마 13 : 1-8 )
그들의 마음이 길가와 같이 완악하여 돌밭과 같이 잠시 기뻐하다가 환난과 핍박에 넘어지고
가시떨기와 같이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한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여 열매를 뱆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열매가 없는 것이다.
만일 그들에게 열매가 있다면 그것은 악한 열매다.
예 수께서 말씀 하시기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 7 : 15-18 )고 하셨다.
그들의 나쁜 열매는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 5 : 19-21 ) 고 하였다.
그와 같은 것들이라 하였으니 위에 열거한 종류와 같은 성격의 모든 악한 일을 통칭하는 말이다.
또한 그들에게 좋은 열매가 있다면 그것은 속이는 기술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 (사 5 : 2 )라고 하였다.
이는 좋은 포도나 들포도나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그 질이 다르며 이름도 맛도 다름과 같이 가민히 들어온 이단들도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하여 분간키 어렵지만 그 내용이 전혀 다르다는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양의 옷을 입은 이리 (마 7 : 15 ),
회칠한 무덤 (마 23 : 27 ),
평토장한 무덤 (눅 11 : 44 ) 같다고 하셨다.
속에는 무서운 이리지만 겉으로는 양의 옷이며 속에는 썩은 시체가 들어 있지만 겉은 회칠을 하였다
가을 나무 : 가만히 들어온 이단을 나무로 비유한 마지막 말씀이다
역시 희망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땅 위에 선 나무가 죽었고 그 뿌리가 뽑혔으며 열매까지 없다 하여도 봄이라면 어떤 기대를 가져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을이다. 이제 앞으로는 얼어 붙는 겨울이 있을 뿐이다.
살 로 희망이 있을 수 없고 처량 하기만 하다. 이상은 가만히 들어온 자들의 상황이다.
다음은 어느날 나의 목회 심방 때의 일이다.
가로수 한그루가 둥지는 하얗게 컵질이 밧겨져 있었으나 위의 가지는 잎이 푸르른 그대로였다.
그 나무를 본 순간 내 몸은 나도 모르게 화석처럼 굳어져 그 곳에 멎었다.
저 푸른잎이 이제 마르면 가지에는 영원히 푸르름이 오지 않을 것이다.
이미 얻어진 진액이 다하는날 저 나무는 완전히 죽은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주여 제가 저 가로수가 아닙니까 ?" 하며 머라를 숙인채 자기와 나무를 비겨보는 마음이 그칠 줄을 몰랐다.
과연 전에 미이 얻은 은혜로 움직이고 있는 자기인지 아니면 지금도 계속되는 성령과의 사귐으로 움직이는 자기인지를 묵상함이었다.
그후 지금까지도 그 나무와 나 자신을 비겨 보는 일이 가끔있다.
(5) 바다의 거친물결
이 말씀은 가인, 발람, 고라같은 이단자들이 거창한 파도와 같이 날뛰지만
그 결과는 바닷가에 부끄러운 찌꺼기가 밀려 나오듯이 그들의 모든 추악한 일들이 드러나게 된다는 말씀이다.
이단들이 교회와 단체에서 파도처럼 출렁대며 날뛰지만 언젠가 그들의 정체가 바다의 찌꺼기 같이 밀려 드러나게 될것이다
이같은 자들은 항상 있는 것이다.
자기의 수치 : 인생의 수치는 죄에서 온다.
죄만 없다면 벗고 살아도 부끄러움이 없다. 옛날 아담과 이브가 범죄 전에는 옷을 입지 않았으나 부끄러움을 몰랐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 후에는 무화과 잎으로 몸을 가리웠고 하나님께서도 양의 가죽으로 그들을 입히셨다.
그 후로 인간은 숨은 부끄러움을 지닌자가 되었고 (엡 4 : 2 ),
더 나아가 부끄러움으로 영광을 삼는데까지 이르렀으며 (빌 3 : 19 ),
종말에는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롬 6 : 21 ).
하나님이 단번이 주신 도로 그원을 얻은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숨은 부끄러움과 인간들이 영광으로 삼는 부끄러운 일을
다 벗어 버리고 의의 옷을 입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삼을 입어 살다가 영생에 이른다.
그러나 저희 곧 가만히 들어온 자들은 여전히 숨은 부끄러움과 부끄러움의 영광에서 떠나지 못하고 오히려
그 부끄러움의 영광을 얻으려고 열중 하다가 사망에 이른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의 찌꺼기가 드러나는 인생의 말로를 면치 못한다.
거품을 뿜는 : 거품은 파도가 출렁일 때 떠오른다. 인간들이 행동할 때 드러나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상태이다.
뿜는다는 것은 안의 것이 밖으로 밀려 나오는 기운이다.
이 단자들의 불경건한 정욕에서 발하는 기운이다.
인간은 자기 속에 있는 것이 밖에 노출되며 밀여 나오게 마련이다.
선을 쌓은 자는 선한 것을,
악을 쌓은 자는 악한 것을 각각 뿜어 낸다 (마 12 : 35 ).
생명을 창조 하신 하나님은 인생에게 생기를 뿜어 넣어셨고 (창 2 : 7 ),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운을 뿜어시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 (요 20 : 22 ),
장차 죽을 두 증인에게는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 부활 할 것이다 (계 11 : 11 ).
이같 이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뿜어신다.
성도들의 마음과 몸도 그 신앙 정도에 따라 부절히 뿜어내는 생태가 있다.
바 다 : 본서의 바다는 자기의 부끄러움을 뿜는 물결을 말하려는데서 쓰여진 말이다 마는, 이단자들이 활동하며
부끄러운 거품을 뿜는 곳이 역시 이 세상이다.
세상은 바다와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고해라고 한다.
성경에도 이 세상을 바다라고 부른다.
앞에서 말한 임초 역시 바다를 전제로 한 말이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사 57 : 20 ) 고 하였다.
다니엘을 이 세상을 바다로 계시를 받았고 (단 7 : 2-3 ),
사도 요한도 이 세상을 바다로 보았다 (계 13 : 1 ),
그리고 바울은 이 세상의 풍조에 동요치 말라 하여 세상을 물결이 흉흉한 바다로 생각 하였다 ( 엡 4 : 14 ).
예수께서도 이 세상에서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사신 일을 요나의 기적이라 하셨다.
요나가 바다의 고기 뱃속에서 삼일 만에 나오게 된 것을 비유하심이었다.
거 친 물결 : 거칠다는 것이 이단자들의 성격과 생태이다.
억세고 거칠고 사나운 상황의 생태를 말한다. 잔인하고 포악하다
무 서운 눈, 사나운 얼굴, 악하고 독한 말과 거센 행동으로 자기의 욕망을 이루려 날뛰는 모습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 거친 물결이 태산 같이 큰소리로 벼락치듯 해변에 밀려들 때의 광경이야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장관이다마는,
그 결과는 바닷가에 부끄러운 찌꺼기를 실어다 준 것밖에는 다른 것이 없다.
오늘날 이단자들이 교계에서 국내 국외로 오가며 활동하는 모양이 영웅적이요 위대하고 굉장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는 재리와 허영과 음란과 위선과 거만과 모든 추악한 그들의 숨은 부끄러운 일들이 해변에 밀려나온
더러운 찌꺼기 같이 드러나고 있고 또 드러날 것이다.
그러므로 겉보기에는 같은 열매 같지만 속이 전혀 다르다. 마치 좋은 포도와 들포도가 다름과 같다.
남을 속이는 열매요 속이는 거짓 선지자들이다. 그들에게는 참말로 좋은 열매가 있을 수 없다.
(6) 유리하는 별들
이 말씀 역시 가인, 발람, 고라 밎 그 같은 자들 곧 이단자들에 대한 말씀이다.
별은 교역자들이다 ( 계 1 : 20 )
그들이 하나님과 사람을 위한다고 하면서 자기 지위와 명예와 이권을 위하여 돌아 다니는 모습이 유리하는 별과 같다.
그들이 결국에는 캄캄한 흑암에 들어가 영원히 화가 있을 것을 말씀 하심이다.
이 유리하는 별은 혜성을 말한다.
혜성은 빛나는 긴 꼬리를 끌고 태양을 촛점으로 하여 포물선이나 타원의 괘도를 도는 별이다.
즉 자기 궤도를 잃고 방황 하다가 파멸된다.
3 개인 곧 가인, 발람, 고라는 빛나는 긴 꼬리 같은 유명한 인물들 이엇다.
그들이 태양을 촛점으로 궤도를 도는 혜성과 같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혜성이 자기 궤도를 떠나 도는 것같이 그들도 하나님의 진리를 떠나 어그러진 궤도를 도는 생활을 하였다.
그들은 예비된 캄캄한 훅암에 들어갈 혜성같이 장차 캄캄한 지옥에 가게 될것이다.
또 한 혜성은 뛰어나게 뚜렷함의 상징이다.
가인과 발람과 고라는 당시에 있어 뛰어나게 뚜렷한 존재들이었다.
어느 때나 가만히 들어온 이단자들의 존재는 뚜렸하다. 그들이 뛰어난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세상의 지혜와 수단과 힘을 가진 자들이다.
유리하는 것이 가인, 발람, 고라의 길이며 이단자들의 생태이다.
이단자들은 정정당당히 나타나지 못하고 참 종들이 없는 곳이나 없을 때에 여기저기 나타나 자기대로위 잘못된 빝을
참 빛처럼 가장하여 돌아 다닌다.
마치 혜성이 빛의 작용이 없는 곳으로만 유리 하는 것과 같다. 어두운 길, 다른이가 모르는 골목길을 가만히 돌아 다닌다
성경 중에 별에 대한 몆가지의 기록이 있다.
물질계의 별은 하나님이 지어셨다 (창 1 : 14-19 ).
사람이 별 사이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과 (욥 1 : 4 ),
장차 밤의 별들이 별들에게 ( 밤은 밤에게 ) 지식을 전할 때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를 것이라고 하셨다 (시 19 : 1-4 ).
현 대 별 세계에 인간들이 오르내리며 대화와 촬영하는 과학이 성경 말씀을 입증하고 있다.
이 별들은 말세에는 없어질 것이며 (마 24 : 29-30, 계 6 : 13 ),
결국에는 다 불에 타서 녹아 없어잘 것이다 (벧후 3 : 7, 10, 12 ).
사람을 별이라고 하였다
예수 탄생 하실 때 별이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된대로 (민 24 : 17 ) 탄생 하실 때에 와자별이 나타났었다 (마 2 : 2 ).
그리고 그를 새벽별 (계 2 : 28 ),
광명한 새벽별 (계 22 : 16 ) 이라고 하였다.
주의 종들을 별이라 하였고 (계 1 : 20 ) 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계명성이라 표현하였다.
사탄도 별이었다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사탄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 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고 말씀하셨고
요한은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게 9 : 1 ),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계 12 : 9 ) 고 하였다.
이상과 같이 여러 종류의 별들 중에 가만히 들어온자 곧 회개 하지 않고 교회와 신자들을 위하는 종이라는 미명 아래
자기의 불경건한 정욕을 이루려 돌아 다니는 거짓 종들을 유리하는 별이라고 하고 있다.
미치 독수리나 새와메가 먹이를 찾아 헤매는 것과 같이,
여 우가 썩은 냄새를 맡으며 썩은 것을 찾아 다니듯이 돌아 다닌다는 말이다.
그들에게는 밝은 낮이라도 빛이 없는 어두운 길 뿐이다.
옛날 범죄하여 화 받은 가인이 유리하게 되었으며 (창 4 : 12 ),
에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믿지 않으므로 38년을 광야에서 유리 하다가 죽었고 버림 받은 사울왕은
하나님과 사무엘이 그를 떠난후 귀신 들린 여자를 찾아 다니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처럼 버림 받은 이단들은 어두운 길에 유리 한다.
이런 사람들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 23 : 15 ) 라고
그들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닌다고 하셨다.
또 그들은 과부의 재산을 삼키는 자들이다 (뉵 12 : 40 ).
바울은 빌립보 신자들에게 "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 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빌 3 : 18 ) 고 말하였다.
그리스도 십자가를 전하려 다닌다는 자들이 실상은 십자가의 원수된 자들이 많다고 한 말이다.
또한 "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 (딛 1 : 10-11 ) 하였다.
잘못된 자들이 이집 저집 돌아 다니면서 하나님과 사람을 위하여 복음을 전한다면서 협잡을 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말세에 교회 안과 밖에 이러한 자들이 매우 많을 것이다.
그러나 유리 한다는 말을 오해하기 쉬운 일이 있다. 예수께서도 유리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있었으니 말이다.
옛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유리하였다 (히 11 : 8 ).
히 브리서 기자는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 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히 11 : 35-38 ) 고 성도들의 유리함을 보였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요단 앞 그릿시내와 시돈의 사르밧과 갈멜산, 브엘세바와 호렙등
여러 곳에 유리 하였다 ( 왕상 17 : 3-9, 8 : 19, 42 ).
신약 시대에도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지냈고 (마 3 : 1, 11 : 7 ), 예수의 공생애 삼 년은 완전히 유리하는 생활이었다.
그 러므로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눅 9 : 58 ) 고 친히
알씀 하셨던 것이다.
그는 광야와 산과 들과 바다와 성전등 각처로 전전 유리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선지 사도들이 유리하는 생활을 한 것은 오직 믿음을 위한 길이었다.
하 나님과 진리와 함께 동행하는 길이었던 것이다. 이단과 같이 자기들 육신의 정욕을 이루는데 필요한 사람들의 세계로
돌아다니 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하늘의 복음을 주기 위하여 재산과 생명을 기쁨으로 희생하는 자들의 유리함이고
인 간을 이용하려고 유리하는 자들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 : 이 캄캄한 흑암을 영원하 예비된 것이라 하였다.
이 "영원"이라 함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와 속성이 영원히 불변하심을 보여준다.
죄가 없어지기 전에는 캄캄한 흑암이 언제까지나 존속된다.
그의 사랑으로 천국이, 그의 공의로 지옥이 예비 되어 있으니 둘 다 영원이다.
이 는 지, 정, 의를 구유하신 인격적인 하나님과 그 속성이 영원 하시기 때문이다.
본서에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가두셨다고 하였고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의 찬송을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부르게 될것 (21 )이라고 하였으니
구원과 멸망이 영원이다.
"캄캄한 흑암 "은 6절 해석을 참조하기 바란다
[주] 유리하는 별 "아스테레스 프라네타이"는 애녹서에도 있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자기들의 지정된 장소와 궤도를 이탈해서 결국 멸망 당하는 별들의 운명을 말한 것이다 (W.B.).
즉 신자 및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법도인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떠나 자기 마음대로 다니는 자들의 상태와 결과를
말씀한 것이다. (에녹서 21 : 1-6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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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에녹의 예언
유다는 구약 3 단체인 이단을 보이고 단체적인 정통인 미가엘의 본을 보였다.
그리고 구약 3 개인의 이단을 밝힌후 개인적 정통인 애녹으로 본을 삼았다.
이 항목에서는 그의 신분과 예언과 정죄 받을 사람들의 생태를 설명하였다.
( 1 ) 에녹
에녹은 아담의 칠세손이다.
그는 죽지 않고 승천한 믿음의 사람이다.
모세 는 에녹이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는데
그가 365세에 하나님이 데려 가셧다고 기록하였다.
그 아들 므두셀라는 969새까지 살았다고 한다 (창 5 : 21-27 ). 여기서 에녹의 신앙을 생각해 볼수 있다.
그가 자녀를 낳은 후에 하나님과 동행 하였다. 이것은 자녀를 낳은 후에 위를 향하였다는 사실이다.
일 반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녀를 낳으면 자기 위를 모른다.
자기 아이들에게만 기울어져 위의 부모님을 망각하는 불효한 일에 거의 빠진다.
그러나 에녹은 자기 아들을 낳은 후 위를 향하였으니 자기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일듯 할 때
어버이가 자기를 낳은 때의 심정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버이 위에 또 한 분이신 하나님,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만드시고 일남 일녀를 지어셔서 부부가 되게 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을 하신 인간의 참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생각 하였다.
그 렇기 때문에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고 삼 백년간 승천 할때 까지 하나님과 동행 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이단자들은 자기 위에 계신 하나님과 부모를 망각한다.
그리고 하나님과 복음과 교회와 다른 이들의 생사를 뒤로 하고 이익을 위하여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허나 애녹과 같은 믿음의 성도들은 위로 하나님과 부모를 모시고 아래로 인간 윤리를 지킨다.
또 애녹의 건전한 신앙을 볼수 있으니 하나님과 삼 백년을 동행 하면서 자녀를 낳았다고 하였다.
하나님과 동행한 믿음과 부부생활로 자녀를 낳은 일이 모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겻이 참되고 건전한 믿음이다.
우리가 이 믿음을 이해할 때 눈이 열린 믿음의 사람이라 할 것이다.
현대 교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은 신령한 은혜를 받아 신앙샐활을 한다는 자들 중에 현실을 무시하고
부모형제 처자를 내버리고 사는 것이 신령한 것인 줄로 아는 일이 많으며,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사람들은 처자주의에 빠져 하나님과 진리를 망각하며 악용하여 범죄하는 자들이 적지않다.
이상의 양자는 모두 잘못된 믿음이다. 전자는 결혼하여 부부생활로 자녀를 낳음이 신성치 못한 것이라고 오해한 자들이요,
후자는 현세주의에 몰두한 자들이다.
그 리고 그들이 가정을 돌보지 않는 일을 부모나 형제나 처자를 버리고 예수를 따르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이 말씀의 뜻은 어느 사람이 가정에 충실하다가 국가의 흥망이 좌우 되는 전쟁이 일어 났을 때 소아를 버리고
대아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 전쟁터에 나감과 같다.
성도들이 자기 가정에서 믿음으로 충실히 일하다가 진리를 위하여서는 필요할 때에는 생명을 다해 진리의 투사가 됨을 뜻한 것이다.
자기 집을 돌아 보지 아니하는 것은 큰 악이라고 하였다 (딤전 5 : 8 ).
또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남편에게 순종하며 아내를 사랑하라는 인류의 계명을 주신 하나님이
함부로 가정을 포기 하도록 명하시랴 ?, 깊이 반성하여야 할 일이다.
천륜과 인륜, 이 둘을 함께 지켜야 한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자기가 인위적으로 키우는 방식을 버리고 그를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그 결과 므두셀라는 성경 인간사에서 제일 장수하는 복을 얻게 되었다.
우리도 자녀의 축복을 얻으려면 위르 향하고 가정을 살펴 천륜과 인륜을 지키는
에녹과 같은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이 에배소 교회에 말하기를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고 공경하면 잘 되고 장수 하리라 하였다 (엡 6 : 1-3 ).
아담 때부터 그의 칠세손 에녹이 승천 하기까지 987년 이었고 아담의 십세손 노아가 출생할 때는 1056년 이었다 (창 5 : ).
에녹의 승천은 확실하다.
히브리서 기자는 맏음으로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다고 기록하였다 (히 11 : 5 ).
엘리야도 죽지 않고 승천하였으며 (왕하 2 : 11 ) 예수께서도 승천 하셨다 (행 1 : 10-11 ).
이와 같이 성경은 승천을 증거한다.
승천을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하는 자들은 인간은 땅에서 나서 훍을 먹고 살다가 죽으면 땅에 뭍히는 것이
만고 불역의 법칙이라고 선언한다.
그 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못하는 것을 능히 하실 수 있다.
지금은 인간의 힘으로도 달나라에 왕래 하고있다.
누가 사람이 달에 갈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었던가 ?.
미국과 소련이 앞을 다투어 하늘을 정복하려는 가장 과학이 앞선 나라들이지만 겨우 달에 왕래하는 정도이다.
현재 미개한 과학으로는 에녹, 엘리야, 예수 그리스도가 승천하신 일에 대하여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가운데 있는 무한한 오묘를 조금 발견하여 이용하는데 불과하다.
그들 은 구우의 일모 정도로 조금씩 알아가는 과학자이기 때문에 무소 부지하신 하나님의 최후까지의 과학에는
미치지 못하여 부정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서는 과학의 시종이다
( 2 ) 이 사람들에 대한 예언
본서에서 유다는 에녹의 예언을 다음과 같이 알려준다.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고 하였다 (14, 15 ).
그럼 먼저 "예언"에 대하여 몇가지 알아 두어야 하겠다.
성경의 예언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데 있다
예수께서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요 14 : 29 )고 하셨다.
그리고 이 예언은 인간들의 학식과 생각으로 해석되지 못한다.
베드로 사도는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 1 : 20-21 ),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벧후 3 : 16 ) 고 하면서
성경의 예언은 인위로 풀어서는 않된다고 밝히 말하였다.
바울은 성경으로만 하나님의 모든 것을 통달하여 안다고 하였다 (고전 2 : 20-25 ),
에수께서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알 수 없다고 하셨고 (요 3 : 1-15 ),
또 주를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베드로에게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 16 : 16-17 ) 고 하셨다.
사도 요한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계 1 : 3 )고 하였고,
사도 베드로는 "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벧후 1 : 19 ) 하여 항상 살피라고 말하였다.
본서에서 에녹의 예언은 주의 임하심과 뭇사람 심판, 저희 정죄, 이상 세가지에 중점을 두었다.
1, 주의 임하심
주의 임하심은 기독교에서 가장 큰 신앙 중에 하나이며 온 인류의 가장 큰 소망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없다면 기독교가 존재할 의의가 전혀 없고 따라서 인류에게 소망이 있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역사 속에 탄생하시고 33 년에 십자가에 죽으셨으며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셨다.
또 40 일 후에 승천하셔서 지금까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인류를 위하여 기도 하시고 온 인류의 있을 곳을 예비 하신 후
다시 이 세상에 오실 덧이다 (요 14 : 1-3 ).
이 일이 참말이라면 믿든지 안믿든지 간에 이는 큰 사건이다.
인류 가 이 세상과 육체적 인간만이 있는줄 알고 있었다면 부활의 예수와 같이 인류가 부활할 것과 영원한 세계에 살게 해
주실려 고 그가 재림하실 일이 인류의 지대한 사건이 아닐수 없다.
3 우주인이 달에 다녀올 때 온 세계가 환호를 울렸다.
예 수는 생명과 사망의 세계, 영계와 물질세계를 자유로 왕래 하시며 인류의 영주처인 천국을 준비 하신후
지상의 인류를 데리려 오실 것이다 .
이것이 사실이라면 누가 그의 재림을 거부하며 누가 그 축복을 싫어할 것인가 ?.
정확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 세상에 있을 것이다.
온 인류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계획이시다.
그러므로 재림에 관하여 명확히 알아야 한다.
A, 재림 때에 대하여 여러 종류의 주장이 있다.
천년왕국 전에 오셔서 천년왕국을 세우시고 왕으로 계실것,
천년왕국 후에 오셔서 천지를 심판 하실것,
천년왕국이 없이 세상 끝에 재림하실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상의 3 설에 각기 많은 주장이 있으나 여기서는 생략한다.
다만 위의 말들은 모두 재림을 믿는 자들의 재림 때에 관한 견해 차이 뿐이고 신앙을 가진 자들의 밀이다.
주의 할 것은 이 말들을 이용하는 이단자들이 많을 것이니 크게 주의해야 할 것이다.
B, 잘못된 재림설이 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과 부활, 승천, 재림을 역사적으로 믿지 않는 자들이다.
그들은 부활 승천 하신 예수께서 말세에 지상에 재림하실 일을 믿지 않는다.
다만 온세계가 그리스도의 사상화 또는 그의 인격화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요 재림이며 재현이라도 한다.
그 리하여 신자들이 인류 안에 들어가서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상과 인격이 되게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뜻에서 자기가 그리스도요 또 누구나 그리스도의 사상과 인격만 갖추면 그가 재림의 예수라고 한다.
이들은 기독교 사회주의자가 될지언정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이같은 자들에 대하여 베드로는
"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벧후 3 : 3-4 ) 라고 하였다.
예수의 재림을 비방하여 조롱하는 교계의 지도자들이 있을 것을 미리 말함이다.
이러한 재림설은 불 신앙이요 인본주의 신학이다.
C, 재림에 대한 성경의 증좌는 매우 많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영원한 세계에 대한 내용으로 되어있다.
사 도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가 (벧전 3 : 22 )
목사장으로 나타나실 것이라고 하였다 (벧전 5 : 4 ),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은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쫓은 것이 아니요
직접 친히 보고 들은 것이라고 증거하였다 (벧후 1 :116-18 ).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주의 강림을 비방하며 믿지 않겠지만 이 세상 끝날 재림하실 때 천지는 불타 없어지게 되고
영원한 세계로 옮겨질 것이라고 밀하였다 (벧후 3 : 3-13 ).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 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고 했으며 (롬 8 : 34 ),
부 활의 차례를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속한 자요, 그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마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 밝히 주의 재림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고전 15 : 23-24 ).
또 주 강림하실 때 주 예수 앞에 성도들이 바울의 소망과 기쁨의 면류관이라고 하였으니 (살전 2 : 19 )
이 말씀에서 재림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바울의 모습을 본다.
예수께서는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것이며 (살전 3 : 13 ),
주 강림하실 때까지 살아있는 자들이 자는 자보다 앞서지 못하고 주 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살전 4 : 15-16 ).
재림의 시기에 관하여는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것이라고 하였으나 빛의 아들과 낯의 아들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않으리라는 말씀이다 (살전 5 : 2-5 ).
또 한 강림 하시기 전에 배도하는 일이 있고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난 후에 주께서 강림하사
입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폐하실 것이라 하였다 (살후 2 : 2-8 ).
야고보 선생은 고난 받는 형제들에게 주의 강림하시기 까지 길이 참으러고 하며
주의 강림이 가깝고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다고 하였다 (약 5 : 7-8 ).
예수 승천하실 때 흰옷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행 1 : 11 ) 고 제자 들에게 말하였다.
예수께서도 친히 제자들에게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 : 2-3 ) 고 언약하셨다.
주의 임하심을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말세 환난 후에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고 별들이 떨어지며
하늘이 흔들릴 때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셨다 (마 24 : 29-30 ).
사도 요한은 장차 오실이 (계 1 : 4 ),
구름을 타고 오실것 (게 1 : 7 ),
말세에 강림하시어 세계를 지배할 짐승을 이기시는 어린양,
만주의 주,
만왕의 왕 (계 17 : 14 ),
흰말 탄자, 충신, 진실, 피옷 입은자, 하나님의 말씀 (계 19 : 11-16 )등으로 세상 끝에 강림하실 것을 말하였다.
또 재림의 예수 그리스도는 천년 동안 이 땅에서 왕노릇 하실 것이며 (계 20 : 4 ),
속히 오리라는 말씀을 들었고 (계 20 : 7, 12, 20 ),
요한은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계 22 : 20 )라고 하였다.
죄와 상광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실 것이다 (히 9 : 28 ).
비유로 말씀하심도 많으니 예수께서
주인으 로 ( 마 13 : 18-30, 36-43, 47-50, 21 : 1-6, 33-46, 24 : 41-51, 25 : 14-30 ),
신랑으로 ( 마 25 : 1-13 ),
목자로 ( 마 25 : 31-46 ),
임금으로 ( 마 22 : 1-14 ) 오실 것이라 친히 말씀 하셨다.
구약 성경에도 역시 메시야 굳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 죽으삼, 부활, 승천, 재림에 중심한다.
다윗은 열방과 세상의 임금들과 민족들이 만왕의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역하여 분노하고 헛된 일을 경영하며
서로 꾀하여 대적하겠으나 마침내 그가 오셔서 온 세계를 다스릴 터이니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하였다 (시 2 : 1-12 )
다니엘 선지자는 예수께서 이 세상 끝에 오셔서 만왕의 왕되실 일을 느부갓네살왕에게 우상으로 보이신 계시 중에서
보았으니 곧 정금 머리, 은 가슴과 팔, 놋 배와 넙적다리, 철 종아리, 반 찰, 반 진흙의 우상을 사람의 손대지 아니한
뜨인 돌이 그 우상을 쳐서 부숴뜨린 후 그 돌이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다고 했다.
이는 바벨론 때부터 세상 끝날까지의 역사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 하시어 온 세계를 다스릴 일을 뜨인 돌로
보이신 것이다 (단 2 : 31-45 ).
그리고 벨사살왕 원년에 다니엘이 보니 하늘 보좌와 짐승의 죽음과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 적 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다 (단 7 : 9-27 ).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말세에 짐승의 나라가 우세 하다가 종말에 그리스도 강림으로 이기시고 그리스도 왕국이 건설될 일을 본 것이다.
벨사살왕 삼년에 다시 수양과 수염소의 계시 중에서 이 두 짐승이 서로 싸워 수염소가 이긴 후 하나님을 대적하며
온 땅의 지배를 자유로이 하며 제사를 폐하여 만왕의 왕을 대적하다가 사람의 손을 말미암지 않고 깨어질 것을
계시로 알게 하셨다 ( 담 8 : )
다니엘은 마지막으로
"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일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단 12 : 11-13 )는
계시를 얻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일을 말하였다.
이상과 같은 다니엘의 많은 계시에서 예수의 재림과 그앞의 세상 끝애 관한 일들이 신약 성경 중의 말세 예언과
많 은 관계를 지니고 잇다 (마 24 :, 살후 2 :, 계시록 ).
이 외에도 구약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집중되어 있음은 너무나 명확하다.
D, 재림의 장소는 물론 이 세상이다.
인격자이신 그는 예루살렘 잎 곧 동편 간람산 에 서실 것이니 스갸랴 선지자가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슥 14 : 4 ) 함과 같다.
사도 요한도 짐승이 음녀를 이긴후 예루살렘에서 온 세계를 지배하고 있을 때 (계 11 : 2, 13 : 5-8, 17 : 16-17 )
만왕의 왕되신 그의 재림이 그 짐승의 나라를 이기시고 짐승 (무신론국가 )을 잡아 심판하시려 예루살렘에 오실 것이다.
그 때에 예루살렘 앞 감람산에 서시게 될 것이다 (계 19 :, 20 : 1-6 ).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마음 안에 계심과 성령께서 우리 속에 계심과 성령과 진리가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됨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뜻한다.
그러나 말세의 재림은 그가 직접 세상에 다시 오심을 말한다.
E, 재림의 살황은 그 대략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구름을 타고 오심 (계 1 : 9 ),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심 (마 16 : 27 ),
왕권을 가지고 오심 (마 16 28 ),
하늘로 부터 오심 (살전 1 : 10 ),
성도와 함께 오심 (살전 3 : 13 ),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오심 (살전 4 : 16 ),
인자의 징조 후에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권능으로 오시고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사
택한자를 모으심 (마 24 : 30-31 ).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오심 (마 25 : 31 ),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심 (마 26 : 64, 단 7 : 13 ),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심 (행 1 : 11 ),
도적과 같이 오심 (살전 5 : 2 ),
도적같이 임하지 못함 (살전 5 : 4 ),
입의 기운으로 이기시며 오심 (살후 2 : 8 ),
천지가 불에 타 녹아질때 오심 (벧후 3 : 8-13 ),
수 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오심 (밷후 3 : 14 ),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심 (신 33 : 2 ),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 할것 (슥 14 : 5 ),
키를 들고 오심 (마 3 : 12 ),
흰말을 타고 오심 (계 19 : 11-16 ),
낫을 가지고 오심 (계 14 : 14-20 ),
뜨인 돌로 오심 (단 2 : 34 ),
어린 양으로 오심 (계 6 : 16, 19 : 9, 21 : 9 ),
광명한 새벽별로 오심 (계 2 : 28, 민 24 : 17, 바 2 : 2, 계 22 : 16 )
이상은 그가 오실 때의 살황이다.
F, 재림의 때에 대한 일이다,
이 문제는 기독교 또는 인류의 중대한 난문제 중의 하나이다.
이를 정확히알 수만 있다면 온 세계를 아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경륜과 인간의 역사를 함께 아는 것이어서
개인, 국가, 사회 그리고 종교계 모두에게 참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생사를 좌우 하는데 참 빛이 될 것이다.
인간들이 거짓 예언과 악령의 예언들이 재림의 때를 마름대로 말하여 교계를 문란케 하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사례가 허다하다.
뿐만 아니라 바른 믿음을 가지려고 진심으로 노력하는 자들도 성경의 기본지식과 믿음의 연약 및 무지 함으로
이 재림의 때에 대하여 모호함이 적지 않다.
재림 때는 어떻게 정리 되어야 할 것인가 ?.
겸허한 마음으로 성경을 중심하여 살펴보자.
마태복음 24장 36절의 바른 해석이 먼저 필요 하겠다.
"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는 말씀이다
예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니 더 생각 할 것도 없이 그 때는 알수 없다고 체념한다.
이는 본문의 바른 이해가 되지 않음이다.
만일 이 말씀 그대로 예수께서도 알지 못하신다면 중대한 문제가 뒤를 따른다.
첫째, 삼위 일체의 교리가 무너질 것이다.
삼위이신 성부, 성자, 성령의 아심이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자들이 이 말씀으로 변론한다.
아버지(성부)만 아시고 아들 (성자)은 모르신다면 어떻게 일체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렁 때는 이 말씀의 바른 뜻을 알지 못하면 그들에게 답할 말을 찾지 못할 것이다.
다만 자신 없는 몇마디 말을 하는데 그칠 것이다.
그러면 이 말씀의 바른 풀이를 알아 보자.
삼 위께서는 항상 같이 계시고 함께 일하시지만 시간과 일을 각각 분담하신다.
시간적인 분담을 보면 구약시대는 성부 중심시대로 여호와께서 약속하시는 때이며,
신약 33 년은 성자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때이고,
승천 후 열훌만에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 강림하신 후부터는 성령의 때이다.
그러기에 예수께서 성령에 대하여
"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 : 7 )
라고 말씀하신대로 그가 승천 하신 후에 성령이 오셨다.
즉 성부는 구약 4 천년,
성자는 신약 33 년,
성령은 강림 때부터 세상 끝까지의 시간적 분담이다.
사무적으로는 성부의 예정과 약속, 성자의 속죄, 부활, 승천, 재림,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으로 완전케 하시는 사무적 분담을 하신다.
이와 같이 시간과 사무를 분담하신다.
성부와 성령께서 성자와 같이 육신으로 오시지 않는다고 하여 능력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님과 같이
삼위께서 각각 자기의 때와 분담한 일외의 것을 않으셨다고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날과 때는 삼위 중에 성부의 권한에 속하다.
그러므로 성부께서 뜻하지 않으실 때는 성자와 천사들도 관여치 못한다.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행 1 : 7 ) 라고 하셨고
누가도 하나님께서 연대를 정하셨다고 하였으며 (행 17 : 26 ),
욥도 여호와께서 그 날을 정하셨고 그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 제한을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다고 증언한다 (욥 14 : 5 ).
그렇 기 때문에 마태복음 24 장 36 절의 말씀은 그 날과 그 때는 아버지의 권한에 속한 것이니 아들이라도 관여할 바가
아니 라는 말씀이다.
예컨대 어느 아들이 출타 한 아버지를 찾아온 나그네에게 어떤 질문을 받았을 때 아버지와 그 나그내의 일을 들어 아는 아들이지만
"저는 잘 모르겠으니 아버님 만나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대답하는 격이다.
둘째, 날과 때는 아버지의 권한에 있지만 그의 기쁘신 뜻 가운데 알게 하시면 얼마든지 알수 있는 것이요
절대로 모르는 것이 아니다.
실례를 들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애굽에 사백 년동안 있다가 나올 것이라는 일 (창 15 : 13-16, 출 12 : 40-41, 행 7 : 6 , 갈 3 : 17 ),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함으로 이방에 7 기간 후에 회복될 일 (레 26 : 18, 21, 24, 28 ),
회개하는 히스기야왕에게 수한을 15 년 연장한 일 (사 38 : 5 ),
다니엘 선지자의 70 주일 예언 (단 9 : 24-27 ),
짐승의 나라가 2300 주야까지 권세를 잡음 (단 8 : 13-14 ),
가증한 물건이 거룩한 곳에 선 때부터 1290 일을 지나고 기다려서 1335 일 까지 이르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는 예언 (단 12 : 11-12 ).
대환난 때에 두 증인이 1260 일을 예언할 일 (계 11 : 3 ),
이방인이 성전 밖 마당을 마흔 두달 동안 짓밞을 일 (계 11 : 2 ),
두 증인이 삼일 만에 부활할 일 (계 11 : 11 ),
여 자가 광야로 도망하여 1260일 동안 양육 받을 일 (계 12 : 6 ),
곧 한때, 주때, 반때를 합하여 세때반으로 재설명한 일 (계 12 : 14 ),
짐승의 나라가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을 일 (계 13 : 5 ),
다섯 달 동안 괴럽게 하는 일 (계 9 : 5 ) 등 모든 날과 때는 사람들이 성부의 기쁘신 뜻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사자들을 보내어 알게 하신 것으로 이점 일획이 틀림없이 응하였고 또 응할 것이다.
이같이 날과 때를 인간이 전혀 알수 없는 것이 아님을 성경에서 본다.
세째, 하나님이 알게 하시면 안다.
아모스가 하나님은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함이 없으시리라고 증거하였다 (암 3 : 7 )
다윗은 "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시 25 : 14 ) 하였고
아브라함에게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창 18 : 17 ) 하시고
그의 장래 축복과 소돔 심판을 알려 주셨으며 롯에게도 알려 주셨다 (창 19 : ).
이와 같이 하나님은 자기의 비밀을 자기의 종에게는 알리시고 행하신다
네째,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 재림의 때도 알려 주실 것인가 ?.
그 날과 그 때를 알 수 있을 것인가 ?. 이 중요한 사실을 알아보자.
바울은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살전 5 : 1-4 ) 하였다.
알지 못하게 도적 같이 오신다고 하였으나 빛의 아들, 낯의 아들들에게는 도적 같이 임하지 못한다는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로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도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마 24 : 42-43 ),
"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 24 : 44 ),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 24 : 48-51 ) 하시어 그 날과 그 때를 알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이와 달리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마 254 : 15 ) 라고 알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비유하신 말씀에도 "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마 25 : 6 ) 는
신랑되신 예수의 재림에 앞서 사자의 알림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 25 : 13 ) 하시어 안다 모른다는 두 가지로 말씀하신 것이다.
요약해 볼 때 빛의 아들, 낯의 아들과 예비 하였던 다섯 처녀들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못하시어 성경을 읽는자는 깨닫고
알아 구원에 이르며 혼인 잔치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어듬의 아들, 밤의 아들과 성경을 읽자 않는 자와 예비치 못한 자와 악한 종들은 그 날과 그 때를 확실히 알지 못하여 멸망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정성껏 깨어 메시야의 별을 기다리던 박사들에게는 별로 ( 마 2 : 1-12 ),
유월절 양을 먹이며 속죄주를 기다리던 목자들에게는 천사로 (눅 2 : 8-20 ),
성전에서 죽기 전에 메시야를 만날 것을 믿고 기도하던 안나와 시므온에게는 성령으로 (눅 2 : 25-38 ) 지시하사
알게 하시고 뵙게 하셨다.
그러나 물질과 명예욕으로 외식하는 예루살렘 종교계의 지도자들과 신도들은 전혀 알지 못하였다.
이처럼 초림 때에도 알지 못한 자들과 안 자들이 함께 있었다.
성경에는 이율 배반이면서 하나인 진리가 가끔 언급되고 있으니 항상 기뻐하라 (마 5 : 4 ) 는 기뻐하면서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마 5 : 4 )는 기뻐함과 정반대인 애통함을 같이 권하시는 모순스럽게 조화 되는진리의 말씀이 적지 않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도 알 수 없다는 말씀과 알 수 있다는 말씀이 함께 있음을 명심 아여야 한다.
다섯째, 재림에 대하여 계산하는 성경은 다음과 같다.
모세가 하나님과의 문답에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 범죄하면 7 기간을 징치하여 회개한 후에 회복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레 26 : 18, 21, 24, 28 )
7 기간에 대하여 학자들의 계산은 1 기간을 일년으로, 인년은 365 일이니 (유대 나라에서는 일년이 260 일임 )
7 배를 하면 2530 일이 된다. 하루를 일년으로 계산 하면 2520 년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 범죄하여 이방 바벨론에 포로된 때가 기원전 696 년이었다.
그 때부터 2520 년간 징치를 받으면 회복된다는 것이니 계산하면 1914년이 된다.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해이다
이 전쟁이 1919 년에 끝이 나게 된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이스라엘의 19세 된 한 청년이 부전광선을 만들어 영국 정부에 제공하여 승전에 큰 공이 있었다.
영국은 그 청년에게 공로 표창을 하려고 무었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는 자기 나라의 독립을 원하였다.
이에 감동한 영국 정부는 벨브 대장을 보내어 영국의 위임 통치권을 양보하여 독립의 의의를 얻었다고 한다.
이스라엘이 이 때를 전후하여 회복에 박차를 가하여 현재까지 발전하고 있는 이 일이 예언의 응함이라고 주장하며
멀지 않은 장래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 강조한다.
즉 예수께서 말씀하신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 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마 24 : 32-33 ) 는 말씀이
이스라엘 나라가 겨울과 같은 징치가 지나고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가 나는 봄철같은 회복의 징조가 있으면
여름이 가까움같이 예수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학자가 많다.
이상의 해석은 정통 교파에서 용인되는 해석이다.
또 하나는 다니엘이 받은 계시의 말씀 (단 7 : 1-8, 11-12, 17-28, 8 : 9-14, 19-26, 9 : 24-27, 12 : 11-13 ) 을
예수께서 강조라신 말씀 곧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마 24 : 15 ) 라고 하심이다.
특히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일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단 12 : 11-13 ) 는 말씀이다.
가증한 물건이 무었이며 거룩한 곳에 선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면 그때부터 1290 일과46 일을 더한 1335일에
예수 그리스고께서 재림 하실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러므로 온 세계 신자들의 해석 몇가지를 소개하고 필자가 깨달은 해석을 증거하려 한다.
1, 과거사로 취급하는 해석이 있다
가 증한 물건의 예언은 기원전 또는 기원 70 년에 이미 다 응하였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수리아왕 안디오코 에피차네스가 기원전 171년에서 동 165년 12월 25일까지 사이에 성전을 모독 하였던 일로
응하였다고 하며 또 기원 70년 로마 대장 디도스가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점령할 때 로마 군기를 성전에 세우고
예배를 폐하였던 일로 다 이루었다고 한다.
그 들은 요한 계시록이 기원 69 년에 기록되고 그 일년 후에 다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2, 미래사로 해석하는 신앙의 사람들은 이 세상 끝에 있을 예언이라고 한다.
그 예언이 기원 전에 응해 버린 것이 아님은 예수께서 기원 33 년에 미래에 있을 일로 말씀하셨고 또한 70 년에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이유는 요한 계시록을 기원 96 년에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경의 역사적 사건들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경우도 있다.
소돔성이 불로 심판 받은 것은 그 때의 역사적 사실이면서 장차 이 세상이 불로 심판을 받을 불심판의 거울이 됨과 같은 일이다 (유 7 ).
이같이 수리아 왕 때와 로마 때의 일이 예표는 될 수 있다.
3, 온 세계에 알려진 하나의 해석은 가증한 물건을 회회교로 보고 거룩한 곳은 성지 예루살렘으로,
그리고 선 것은 회회교가 예루살렘을 점령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회회교가 예루살렘을 점령한 해는 637 년이며 1290 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계산하여 더하면 1927년이 되는데
이 때에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에 중대한 일이 있을 것이며 1335 일 곧 45 일 즉 45 년을 더한 1972년이 재림의 해라고 강조하였다.
4, 위와 같은 성경을 지닌 또 하나의 해석이 있다.
가증한 물건은 회회교 우상이며 거룩한 곳을 예루살렘 성전이요,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은 회회교 교주 우상을 성전에 둔 것이라고 말한다.
회 회교 교주 우상을 성전에 둔 해는 688 년이었다.
이 해석가들은 688 년부터 1260 일 곧 1260 년이 되는 1948 년에 이스라엘이 독립하고 30 일 곧 30 년이 더한 1290 일이 되는
1978 년에 회회교 우상이 물러가고 이스라엘 성전이 다시 회복할 것이며 그보다 45 일 곧 45 년이 더한 2023 년에
예수께서 재림 하신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1948 년에 이그라엘이 독립을 하였으므로 환호를 울렸다. 그러나 그것은 우연의 일치였다.
위의 두 해석이 많이 보급되고 있으나 바른 해석이 될수 없다.
그 이유를 다음 항에서 밝히려고 한다.
5, 가증한 물건은 무신론 국가 곧 짐승의 나라이고 거룩한 곳은 성지 예루살렘이며 선 것은 세계를 통일하여
세계 중앙 정부를 예루살렘에 세우게 될 예언을 말한다.
1260 일은 삼년반이며 42 개월이요,
한때, 두때, 반때를 합한 세때반이다,
짐승의 나라 곧 무신론 국가인 이방이 이 기간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계 11 : 2, 12 : 6, 14, 13 : 5-7 ),
그리고 1290 일은 1260 일 보다 30 을 더한 날이며 1335 일은 1290 일보다 45 일이 더하다.
짐승의 나라가 다스리는 기간인 1260 일 곧 42 개월 (세때반) 은 말세에 대환난때 후삼년 반이다.
환난의 끝이 된 후 재림까지의 30 일과 45 일이 더 걸리게 된다.
곧 75 일은 환난 직후 부터 재림까지의 기간이다 (단 12 : 11-12 ).
이 짐승이 예루살렘에서 온 세계를 다스릴 때 제사(예배)를 폐하게 될 것이다.
이와같이 해석을 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제일 요긴한 문제는 가증한 물건이 거룩한 곳에 선다는 구약과 신약의 예언을 종합적으로 보아 틀리지 않아야 한다.
다 니엘과 예수와 사도 요한과 바울이 언급한 기록을 대조하여 틀리지 않아야 한다.
한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가 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서로 대조하여 이 말씀의 바른 해석에 확실을 기해 보자.
말세에 대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신 마태 24 장 4-31절과 그의 사도인 요한의 계시를 대조함이 명확하겠다.
스승이신 예수의 말씀에 3 단계가 있다.
1 단계는 환난의 시작 때 (4-14) 로 내가지 곧
종교게의 미혹 (4-5),
정계의 전쟁 (6-7),
기근과 지진 (7),
인간의 악 (9-13), 이 있을 것이라 하셨다.
이것이 재난의 시작 (8) 이라 하셨으며 예수의 이 말씀은 사도 요한의 계시록 6 장에 그대로 나타난다.
첫째 인을 떼실 때에 흰말 (종교계의 미혹 ) (1-2),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붉은 말 (정계의 전쟁 ) (3-4),
세째 인을 떼실 때에 검은 말 (흉년, 기근 , 지진 )(5-6),
네째 인을 떼실 때에 청황색 말 (악 죽임 ) (7-8) 이 나왔다.
이 는 스승되신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하신 말씀과 그 제자 요한이 밧모섬에서 받은 말세 예언이 같은 내용과 같은 순서임을 보여 준다.
그 리고 예수 말씀의 2 단계는 대환난 (15-28 ) 이다.
여기에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설 것이라고 그 차례를 말씀 하셨다.
사도 요한은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순교자가 호소함과 수가 차기를 기다리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 ( 9-11 ).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것이 전무 후무한 대환난이라 (21 )는 예수의 다섯번째의 말씀과
사 도 요한의 다섯째 인을 떼실 때 순교자가 있게 된 사실은 정확히 동일한 때의 일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3 단계의 화난 후 (29-31 ) 에 있을 천체의 기사가 사도 요한에게는
사도 요한에게는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보여진다 (12-17 )
이같이 마태 24 장 4-31절과 계시록 6 장은 동일하다.
예수가 말씀하신 미태 24장에서 둘째 말씀인 정계의 전쟁을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6),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7) 라고 하셨다.
이 전쟁은 재난의 시작 때 있는 세계전쟁 곧 아마겟돈 전쟁의 서막전이라는 말씀이다 .
이 서막전이 그기서 그치지 아니한다.
계속하여 대환난에 들어갈 때 가증한 짐승의 나라인 무신론 국가가 잠간 동안 이겨 예루살렘에서 마흔 두달을 다스리게 돨것이다.
이 말씀은 말세 대환난 때의 전쟁 과정으로 보아서도 무리가 아니다.
사도 요한은 이에 대하여 자세하게 언급하였으니 이방인이 거룩한 성을 마흔 두달 동안 짓밟으리라 하였고 (계 11 : 2 ),
전에 두 증인이 1260 일을 예언하리라 하였다 (계 11 : 3 ).
12 장의 짐승 나라들의 머리가 되는 용이 여자 (교회) 를 핌박할 때 여자를 위하여 광야에 1260 일 (한때ㅡ 두때, 반때 ) 동안
양육할 곳이 있다고 하였으며 13 장에는 용과 두 짐승이 온 세계를 점령하여 마흔 두달 동안 일할 것을 말하였고 (13 : 5 ),
17 장에는 짐승이 음녀 (타락한 종교국가 ) 를 불로 이긴다고 하였다 (17 : 16-18 ),
19장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짐승의 나라가 망하여 짐승이 잡히고 용도 잡히개 될 것이라 하여 (19 : 19-21, 20 : 1-3 )
대환난의 장본인인 짐승 곧 가증한 물건이 거룩한 곳에 서게 되는 전후와 그 종말을 명시 하였다.
이상의 마태복음 24 장 4-31절과 전 계시록과 다니엘서 (7 : 1-8, 11-12, 17-27, 8 : 9-14, 19-26, 9 : 24-27, 12 : 11-13 ) 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인 데살로니가 후서 2 장의 말씀들이 모두 동일하다.
다른 해석자들이 1240 일, 1290 일 1335 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계산하는 것은 매우 잘못이다.
이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사도 요한이 1260 일을 42 개월, 세때반으로 증언하였다.
만일 1260 일을 1260 년으로 주신 묵시라면 그것은 마흔 두달, 또는 한때, 두때, 반때라고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회회교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또 회회교 교주 우상을 성던에 둔것도 가증한 물건이 거룩한 곳에 섰다고 말 할수 있다.
제사를 폐한다는 것도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의 2300 주야 동안 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증한 물건 곧 짐승의 나라가 예루살렘만 점령할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뿐 아니라 온 세계의 교회를 문 닫게 하며 제사를 폐할 것이다.
그러므로 가증한 물건과 거룻한 곳에 선다는 것만 정확히 알면 재림의 날까지 알게 되어 있다.
다니엘 선지자의 1290 일 과 1335 일 예언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 날과 그 때는 천사들도 아들들도 아무도 모르며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였으나
또 말씀 하시기를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으라고 하셨다 (마 24 : 15 ).
이 뜻은 가증한 물건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본 때에는 깨달아 알게 된다는 말씀이다.
가증한 물건과 거룩한 곳에 서는 일에 대하여 이미 설명 하였다.
그리고 1290 일과 1335 일을 어떻게 바르게 해석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이 해석에 있어서 상징적 해석과 하루를 일년으로 하는 해석이있다.
또 어려운 문제이니 이 해석은 손대지 말자는 이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견해이요 그릇된 의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주신 계시 중에 낭자가 있어니 깨갈아 알라는 뜻이며
또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예수께서 가증한 물건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다니엘서를 읽고 깨달으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1290 일과 1335 일에 대한 다니엘서를 읽고 본인이 깨달은 바는 다음과 같다.
말세에 있을 대 환난 기간은 7 년이다.
그 이유는 다니엘서 9 장 27절 에 의한다.
다니엘 9 장의 70 주일 계시중 69 주일은 하루를 일년으로 계산하여 그 예언이 응하였다.
69 주일 예언이 응한 예수가 죽으신 때부터 마지막 1 주간까지는 지금까지 1950 여년이 지났다.
그 마지막 1 주간 역시 7 일을 7 년으로 계산해야 되며 이 7 년은 환난 뿐이기 때문에 7 년 대 환난이라고 한다.
7 년 대환난을 전 삼년반 후 삼년반으로 나눈다.
역시 단 9 : 27 의 말씀에 근거한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고 하였다.
이 중에 한 이레 동안 굳게 언약을 정하나 그 절반에 이르러 가증한 물건이 거룩한 곳에 서고 제사와 예물을 금하며 강포할 것이다
한 이레는 7 일 곧 7 년이요 그 절반은 삼일반 곧 삼년반이다.
사도 요한이 이에 대하여 밧모섬에서 묵시를 받을 때 가증한 물건이 거룩한 곳에 서게될 시일를 마흔 두달 (계 11 : 2, 13 : 5-7 ),
그때 두 증인의 예언할 기간이 1260일 (계 11 : 3 ),
그리고 용을 피하여 광야에 간 여자가 하나님이 예비 하신 곳에 1260 일 (계 12 : 6 )을 양육 받을 것이며,
또 뱀의 낮을 피한 여자가 광야에서 한때와 두때와 반때 (계 12 : 14 )를 양육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다니엘의 1290 일과 1335 일의 예언의 때는 사도 요한의 1260 일, 세때반, 43 개월의 예언의 때이다.
요한이 1260 일을 때로는 세때반, 달로는 42 개월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다니엘의 1260 일과 1335 일도 그대로 계산하여야 한다.
1260 일이 42 개월 곧 삼년 반이니 1290 일은 1260 일 보다 30 일 더 있고 1335 일은 1290 일 보다 45 일 더 있다.
이 30 일과 45 일을 달리 해석 하지 말아야 한다.
후 삼년반이 지나 75 일이 되면 예수께서 재림 하시게 되는 예언으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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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재림 후
짐승의 나라 곧 거륙한 곳에 선 가증한 물건을 정리 하시며 폐하신다 (계 19 :. 살후 2 : )
바울이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살후 2 : 8 )
하 였고 사도 요한은 거짓 선지자와 짐승을 잡아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에서 나오는 검으로 죽이시며 (계 19 : 20-21 ),
용을 잡아 무저갱에 던저 천년 동안 가두시며 (계 20 : 1-3 ),
혼인 잔치가 있을 것이며 (계 19 : 9 ),
천년 동안 왕으로 계시며 (계 20 : 4-6 ),
곡과 마곡 전쟁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저희를 미혹하던 마귀도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게 될 것이며 (계 20 : 7-10 ),
백 보좌 심판이 있은 후 (계 20 : 11-16 ),
신천지에 들어 가게 된다고 하였다 (계 21 :5-22 ).
또 히브리서 기자는 죄와 상관 없이 그를 바라는 자에게 두번째 나타나사 구하신다고 하였고 (히 9 : 28 ),
예수께서 오시면 자기가 예비하신 있을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실 것이라고 친히 말씀 하셨다 (요 14 : 3 ).
요약하면 실락원이 이 땅에 그의 재림으로 복낙원되어 이 땅의 일을 완결 하시고
이 천지가 영원한 천지로 옯겨가는 일을 히실 것이다.
수 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심 : 모세는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셨고" (신 33 : 2 ) 하였고
스가랴 선지자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 하리라" (슥 14 : 5 ) 고 하였다.
바율은 "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것이라" (살전 3 : 13 ) 하였고,
또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살전 4 : 14 ) 하였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 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히 12 : 22-24 ) 하여
장자들의 총회, 의인의 영들이 하늘에 함께 있음이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하늘 보좌에 24 장로들이 있고 (계 4 : 4, 5 : 11 ),
이미 승천한 에녹 (창 5 : 24 )과 엘리야 (왕하 2 : 11 ) 와, 또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실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었으니 (마 27 : 50-53 )
이들은 구약시대의 성도들이다.
이들이 예수가 한 강도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 23 : 43 )
하신 말씀과 같이 모두 낙원으로 옯겨진 것이다.
그리고 바울의 말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 (살전 4 : 15-16 )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함께 오신다고 하였다 (살전 4 : 14 ).
사도 요한은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계 20 : 4 ) 라고 하였으니
"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계 20 : 5-6 )고 하였다.
바울도 성도가 세상과 천사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고전 6 : 2-3 ).
이상을 종합하여 말한다면 유다가 말하는 주와 함께 올 성인 수만명은
죽지 않고 승천한 엘리야와 에녹,
구약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하시고 부활하실 때에 무덤에서 나와 낙원으로 간 성도,
그리고 신약시대에 죽은 성도들의 영이 바로 낙원에 가서 있고,
순교자와 지조를 지킨 성도들의 영이 낙원에 함께 있다가 ,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 그의 재림 때 함께 온다는 말이다.
그때 순교자와 지조를 지킨 성도들이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아 있는 인류를 다스리는 왕이 될 것이다.
2, 뭇사람 심판
뭇사람을 심판 하실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히 9 : 27 ).
최후 백보좌 심판 때에도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심판을 받을 것이며 바다와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어 행위 대로 심판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계 20 : 12-13 ).
여기서는 특히 가만히 들어온 자들에 대한 심판을 강조한 것이다.
그들은 애당초 경건치 않은 것이다. 그들은 마음, 행위, 말이 불경건한 자들이다
정죄를 받아야 하고 정죄 받기로 이미 옛적부터 기록된 자들인데 마지막 주 예수의 재림으로 심판을 받게 된다는 밀씀이다.
심판은 있어야 한다. 이는 공의이다.
하 나님의 사랑은 천국을, 그러나 그의 공의는 지옥을 준비 하셨다.
그의 사랑으로 인류를 축복하시고 그의 공의로 징치 하신다.
공 의가 없는 사랑은 썩은 것이요 사랑이 없는 공의는 잔인하다.
아내와 자녀를 사랑 한다고 하여 그들의 추악한 생활까지 웃음으로 대하였다면 이는 썩은 사랑이다.
아픈 마음으로 충고하고 책망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잘못했을 때 인자와 긍휼이 없이 처단하는 것도 정도가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입고 그의 기운을 받아 생명을 얻은 인간은 사랑과 공의가 함께 있다.
다 시 말하면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여도 남을 죽이고 모략하여 남의 아내를 빼앗은 자를 죽임을 당하고,
모략을 받으며 아내를 빼앗긴 자와 똑같이 사랑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부득불 공의의 심판이 있아야 한다
심판에 대하여 6 절의 심판 해석을 참조 하기 바란다.
본절 (15 절 )의 심판에서는 다만 심판하시는 세 가지 부분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하나님은 뭇사람의 경건치 않은 마음과 행위와 말을 심판하신다.
본절에서 "경건치 않은 자" 라는 말은 그 인격 전체를 표현함인데 이는 마음에 중심이 되며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은 행위를 말하고,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팍한 말" 은 말의 죄를 뜻한다.
이와같이 각 사람의 마음, 행위, 말을 심판 하신다는 말씀이다.
마음의 죄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 하였느니라 (마 5 : 28 ) 고 하였다
욥은 "언제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기다렸던가
그리하였으면 내 처가 타인의 매를 돌리며 타인이 더불어 동침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는 중죄라 재판장에게 벌받을 악이요
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라 나의 모든 소산을 뿌리까지 없이 할 것이니라" (욥 31 : 9-12 ) 고 하였다.
솔로몬왕은 "네 마음에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잠 6 : 25 ) 하였다.
겉으로는 양의 옷을 입었어도 속에는 이리가 있고 (마 7 : 15 ),
밖은 희게 하였어도 안에는 썩은 시체가 있으며 (마 23 : 27 ),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외식자 (마 23 : 25 ) 들은 다 마음에 죄를 지닌 자들이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이 자기들이 행한 것을 그 앞에 자증할 때
예수는 그들에게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책망 하셨다 (마 7 : 21-23 ).
이 와 같이 선지자 노릇하고 입술로 부르 짖어도 마음이 거룩지 못하여 마음의 죄가 있을 때는 오히려 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말 에 죄가 있으면 심판을 받는다.
작은 혀로 하는 모든 말은 인간에게 매우 중대한 결과를 가져온다.
말은 다른이를 죽이고 살리는 위력이 있고 세계를 불사르는 불이다 (약 3 : 6 ).
예수께서는 형제에게 나가라 하고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하셨다 (마 5 : 22 ).
그리고 다른 이를 비판도 하지 말고 헤아리지도 말라고 하셨다 (마 7 : 1-2 )
.
야 보고 선생은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 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약 3 : 5-8 ) 고 하였다.
말 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사건을 일으키는 두려운 죄인가를 말해 준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은 하나도 남김 없이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또한 마음과 말에 죄가 없다고 가정하여도 행위에 죄가 있으면 심판을 받는다.
행하라고 하신것을 행치 않거나 행치 말라는 것을 행하면 둘 다 죄가 된다.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마 7 : 21 ).
행함이 없으면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고 행함이 있으면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다 (마 7 : 24-27 ).
야고보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 : 26 ) 고 말한다.
인간이 심판 받을 때 자기가 행한 일을 스스로 직고할 것이라고 바울 (롬 14 : 12 ) 과 베드로 (벧전 4 : 5 ) 가 같은 말을 하였다
백보좌 심판 때에는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계 20 : 12 ).
위에 대하여 재미 난 예화가 하나 있다.
한 사람이 죽어 심판을 받을 때였다.
심판주가 먼저 그의 마음을 불러 "어찌하여 진리를 지키지 않고 범좌 하였느나" 고 물었다.
마 음은 대답 하기를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하지 않았읍니까 ?,
제가 항상 선을 원했으나 제 육체가 고집하여 범죄한 것입니다" 라고 아뢰었다.
이때 심판주는 그의 육체를 불러
"네 마음의 말을 들으면 마음이 선을 행하려 할 때 육체 네가 막아 범죄하였다니 사실이냐" 고 물었다.
육체는 두 손을 높이 들어 흔들며 "천부당 만부당 합니다 욱체 저는 언제든지 마음이 하자는대로 억울하게 끌려 다녔읍니다" 라고
책임을 서로 전가 하였다.
그때에 영혼이 말하기를 "보소서 저의 마음과 육체가 항상 의견 충돌로 저는 방관만 할 수 밖에 없었읍니다" 라고
영혼은 죄에 대한 책임이 전혀 없다는듯 자기의 청백함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심판주는 영혼과 마음과 육체를 함께 묶어 지옥에 던졌다는 이야기이다.
마음과 말과 행위는 떼어내지 못할 일체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수 1 : 8 ) 고 하셨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는 말은 입으로 성경을 읽으며 입을 열면 성경으로 말하라는 것이요,
주야로 묵상 하라는 것은 마음에 성경을 묵상함이며,
다 지켜 행하라 하심은 행위를 성경 말씀대로 하라는 말씀이다.
마음과 말과 행위로 인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축복을 받는 길도 마음과 말과 행위가 율법 곧 성경의 진리대로
사는데 있음을 보이셨다.
우리는 마음, 말, 행위 이 세 가지에 심판 받을 죄를 겸손히 회개하고 축복을 받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케 되어 참 구원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
경건치 않은 마음에서 갖가지의 죄가 담겨있다.
예수께서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 7 : 21-23 ) 고 하셨다.
가만히 들어온 거짓 선지자와 거짓 스승들은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다.
오직 육체에 속한 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속에 있는 모든 악한 것이 정화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교계에서 지도자의 지위에 있어 불경건한 마음과 말과 행위를 두려움 없이 행하다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가만히 목적을 위하여 행동한다. 그리고 그들은 은혜를 변하여 색욕거리로 바꾸니 ( 4 )
3 단체 (5, 8, 10 ) 와 3 개인 ( 11-13 ) 과 같은 자들이다.
3, 저희를 정죄
" 저희"는 불경건한 마음, 말, 행위로 범죄하는 이단자들이다.
"정죄"는 예수 재림 때 하신다는 뜻이다.
이 정죄는 다시 변경 될 수 없는 최종의 정죄이다.
정죄에 대하여 많은 기록이 있어 혼돈하기 쉽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매우 커서 구원에 좌우 되는 문제까지 일어난다.
다음 성경을 살펴보자.
옛적부터 판결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들이 있다 (유 4 ).
이에 대하여 베드로는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벧 전 2 : 8 ) 고 하였다.
마지막 때 이전의 죄에 대한 선언 곧 정죄가 변경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은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 중 곧 그 중에서 죽으리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법과 의대로 행하여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물을 돌려 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여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면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않을지라
그의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정녕 살리라 이는 법과 의를 행하였음이니라" (겔 33 : 13-16 ) 고 하였다.
히 스기야 왕이 병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사 38 : 1 ) 는 선언을 하셨다.
그때 "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사 38 : 2-6 ) 고 하셨다.
이와 같이 최종의 심판 때가 이르기 전에는 죽으리라고 선언하신 그 정죄도 진실한 회개가 있을 때에는
그 선언을 취소 하시고 반드시 살리라고 하셨다.
절망적인 정죄를 받을 자들도 최종 정죄 때까지는 정죄를 받지 아니할 자들과 함께 존재하고 있다.
좋은 씨를 심은 밭에 난 가라지를 곡식까지 뽑힐까 염려하여 그대로 두었다가 추수 때에 먼저 거두어 불사르라는
말씀이 증명한다 (마 13 : 29-30 ).
유다가 말한 가만히 들어온 자 곧 이단자들이 가라지에 속한다.
정죄할 자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이니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 5 : 22 ) 고 하셨다.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요 5 : 27 ) 고 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재판장으로 정하셨고 (행 10 : 42 ) 그로 천하를 공의로 심판 하실 자로 정하셨다 (행 17 : 31 ).
또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 하신다고 하였고 (롬 2 : 16 ),
인류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심판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고후 5 : 10 ).
예 수께서 친히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 16 : 27 )
말씀하시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 정죄하실 자이심을 언명하셨다
이 처럼 성자 예수께서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권 곧 정죄권을 받으셨다.
둘째, 성도들이 정죄한다.
예 수께서 재판장이 되시고 (행 10 : 42 ) 성도는 재판관이 되어 정죄한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 16 : 19 ) 고 하셨다.
부활 후 문을 닫고 모인 제자들에게"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 20 : 23 ) 하셨으며 예수께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이 들려 귀신을 쫏아내었다고
비 방하는 자들에게 귀신을 쫏아낸 그의 아들들이 그들의 재판관이 되리라고 하셨다 (마 12 : 27 ).
또 표적을 구한 몇 서기관과 바리세인에게 심판 때 요나의 전도로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 사람을 정죄 할 것이며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던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라고 하셨다 (마 12 : 38-45 ).
회개하고 진리의 말을 듣고 믿는 자들이 심판 때 정죄할 권세가 있음을 밝히 말씀하셨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이며 천사를 판단할 것이라 하였다 (고전 6 : 2-3 .)
세째, 말씀이 정죄한다.
예수께서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요 12 : 48 ),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요 12 : 47 ) 하셨다.
초림의 예수 자신은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넷째, "사람 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막 12 : 36-37 ) 고 하셨다.
자기가 하던 말이 자기를 정죄케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종된 인간이 심판한 예가 있다.
성령이 오신 후에 하나님께 헌금하는 일을 거짓말로 속이던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베드로 사도가 정죄하여 심판함으로
두 사람이 망한 것은 성도에게 심판권이 있음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위와는 달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 : 1-2 ) 고 하였다.
이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회개하고 진리의 말씀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게 된 자들에 대한 말씀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죄를 범하여도 죽는데 이르지 아니할 자들이니 죄를 두고도 죽지 아니한다는 말이 아니요
죽기 전에 성령의 감동으로 회개하여 사유하심을 얻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죽는데 이르지 않게 된다는 말씀이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들은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의 자손으로 선택받은 백성이요 약속의 백성이니
어떠하든지 구원된다는 주장을 하여 온 것과 같이 신약 때에도 교회에 나와 교인만 되면 구원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 많다.
구약의 히브리 사람이나 신약의 교인들이 회개와 믿음이 있은 후에 비로서 참 히브리인이요
참 신자로 구원될 것이다 (롬 2 : 17, 3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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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 사람들 ( 16 )
이 말씀은 에녹이 예언한 불경건한 마음과 행위와 말로 인하여 정죄받을 자들의 생태를 말함이다.
곧 가만히 들어온 3 단체와 3 개인의 생활과 같은 생태이다.
그들은 원망, 불만, 정욕, 자랑, 아첨으로 교계 안에서 일생을 보낸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참된 종이고 자처한다.
교계의 모든 분란은 이같은 자들이 주로 원인이 된다.
1. 원망하는 자
이 는 이단자들의 속성이다.
원망은 잘못된 책임을 다른 이에게 돌리는 것이다.
자기 눈의 들보는 알지 못하고 또 알지라도 그것은 불문에 붙이며 다른 이의 눈의 티를 트집 잡아
거짓말로 죄를 만들어 책임을 전가하며 원망하는 자들이다.
인간 은 자기가 심은대로 거둔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좋은 결과는 자기들의 공으로 돌리고 실패된 일은 다른 이에게 책임을 지운다.
자 기가 자기를 위하여 힘쓰지 않으면서 다른 이 때문에 자기가 불행하다고 원망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어리석고 어둡고 어리석은 자에 속할 것이다.
자기가 자기의 할 일을 충실히 하는 자는 원망함이 없다. 항상 감사함에 살고 다른이에게도 감사하며 산다
감사와 원망의 모든 원인은 자기에게 있다.
다른 이가 자기를 없신 여긴다고 그 사람을 원망하면 어리석은 자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자신을 업신여김 받게 해 온 그대로 다른 이가 인정하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한다.
부르심을 입은 자 곧 바른 믿음을 가진 성도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에 (롬 8 : 28 ),
항 상 기뻐하고 (살전 5 : 16 ),
범사에 감사하며 (살전 5 : 18 ) 산다
그러므로 원망 할 이유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성도는 만일 원망할 일이 있다해도 다른 이를 원망 하지 않고 그 모든 원인을 자기에게서 발견하여 회개한다.
원 망하는 자들은 항상 그들의 불경건하고 정욕적인 현세의 행복과 불행에 기준을 두고 그 목적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원망한다.
그 러나 성도들의 기준은 진리에 있으며 현실과 영혼의 조화 속에 높고 신령한 축복에 그 기준을 둔다.
때문에 어떤 때는 현실적으로 불행하게 될 경우에도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드높은 축복 안에 사는 오묘한 자들이다.
굶고 병들거나 혹은 순교장에서도 얼굴이 천사같이 빛나는 감사와 기쁨에 산다.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자에게도 미소와 향기를 주는 속성을 지닌 생명이다 (마 5 : 43-48, 아 2 : 2 ) .
다른 이를 원망할 길이 없다.
감사하는 사람인가, 원망하는 사람인가에 따라서 정통과 이단이 한번 더 밝혀진다.
[주] "원망 하는 자" 는 "공구스다이" 라고 하는데 이 말은 불평하는 자들의 불만 썩인 목소리를 나타내는 자라는 말이라 한다
출애굽때 백성들이 모세에게 원망할 때 쓰던 말이다 (촐 15 : 24, 17 : 3, 민 14 : 29 ).
2, 불만을 토하는 자
구역에는 한탄하는 자라고 한다.
원망은 다른이에게 잘못된 일을 책임 지우는 일이며 불만을 토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탄식하는 일이다.
높고자 하다가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처소를 떠난 천사와 모세를 거스려 불만을 토하던 고라와 같은 자들이다.
블만은 싸움을 낳는다.
불신자들 가운데도 자기의 분수를 알아 자기 위치에서 사는 사람이 있다.
도를 지닌 자들이 자기 분수를 알지 못하고 허영과 부당한 욕망에 사로 잡혀 얻어지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하는 것은
결국 도를 지닌 자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육에 속하여 성령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유 19 ).
그 리스도의 영이 그 속에 있는 자들은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한다.
오히려 자기의 부족을 용서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과 은혜를 체험한 성도이기에 하늘과 땅의 누구에게도 불만을 초하지 않는다.
모두 감사의 대상 뿐이다.
불만을 토하는 자들의 마음에는 빛이 없고 그 앞길에는 어두움 뿐이다.
이는 빛되신 그리스도의 영이 없기 때문이다. 곧 가만히 들어온 자들의 상황이다.
원망은 원망을 낳고 불만은 불만을 낳는다.
[주] "불평하는 자" 라는 뜻의 멥프시 모이로이" 는 비난 한다는 뜻과 할당 받은 운명 혹은 인생이라는 말로 이루어져있다고 한다.
즉 한탄하는 자라는 말이다
3, 정욕대로 행하는 자
회개없이 가만히 들어온 사람들은 성령이 없는 자들이다. 정욕 밖에 있을 것이 없다.
그리스도인은 정과 욕까지 십자가에 못박은 자라고 하였다 (살 5 : 24 ).
정욕에 대하여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 : 19-21 ) 고 하였다.
정 욕대로 행한다는 것은 정욕의 일을 자제하지 못하고 두려움 없이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욕이 동하는대로 감행한다는 말이다.
소돔 백성들 남녀 노유가 롯에게 왔던 천사들에게 까지 더러운 육체의 정욕이 발동 하는대로 물려 들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성 없는 짐승이다.
사도 요한은 정욕을 크게 3 가지로 나누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표현하였다 (요일 2 : 16 ).
육체가 원하고 안목이 원하는대로 주저하지 않고 행하는 자들이 가만히 들어온 자들의 생태이다.
성 어거스틴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 13 : 14 ) 는
말씀에 사로 잡혀 과거의 모든 정욕의 죄를 참회하고 성자가 되었다.
가 만히 들어온 이단자들은 다른 이가 아니라 자기의 정욕적인 과거의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고
현재에도 그 정욕대로 행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자기의 지위를 악용한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위하고 교회와 진리를 위한다고 하지만 그 실상은 정욕을 이루려고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정욕대로 행한다.
4, 자랑하는 말을 냄
이들은 원망하며 불만을 토하며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이면서 기이한 것은 그 입으로 자랑의 말을 쉬지 아니한다.
베드로 사도는 "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미혹한 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여" (벧후 2 : 18 ) 라고 하였다.
아무 쓸데 없는 자랑으로 자기를 과장하여 사람을 유혹한다고 한다.
심지어 부끄러움으로 영광을 삼아 (빌 3 : 19 ) 자기를 과장하는데 자랑으로 쓴다.
예레미아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 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 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9 : 23-24 ) 고 하였다.
실 상 인간은 자랑할 것이 없다.
실수와 무지와 연약과 죄의 부끄러움 뿐인 것이 인간이다. 다만 주 안에서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 1 : 31, 고후 10 : 17 ).
오직 주와 그 진리를 온 천하에 생사를 다하여 자랑하고 증거 하여야 한다.
그리고 주 안에서 바울이 자랑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는 말을 자신있게 할수 있다.
성도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무리 큰 말로 자랑 하여도 그것은 과장이 아니다.
인간의 과장된 말보다 그는 더 크시고 진실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 밖에서 인간들이 하는 자기 자랑은 깨달음이 없기 때문이며 교계에서는 이단자들의 생리에 속한다.
그입 : 성도들의 입과 이간자들의 입은 전혀 다르다.
입, 혀, 말은 셋이 일체이다.
만일 말에 실수가 멊으면 온전한 사람이다. 능히 온 몸도 굴레 쒸울 것이다.
작은 혀가 큰 것을 자랑하며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으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아는 독이 가득하다.
혀가 담겨 있는 입,
말이 담겨 있는 혀,
참으로 인간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 지체인지 모른다.
인간에게 있는 마음과 말과 행위 중에서 말은 마음과 행위의 중간 위치에 처하여 가장 요긴한 역활을 한다.
작은 입과 한치 혀로 하는 말은 개인과 가정과 세계의 흥망을 좌우하므로 함부로 조심없이 말할 수 없다.
성도의 입과 이단자 및 무지한 자들의 입에 관하여 성경 중의 말씀을 살펴보자.
하 나님의 입기운이 특히 인류와 깊은 관계가 있다.
천지 창조 때 인간을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 (창 2 : 7 ).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요 20 : 22 ) 하셨으며 성령이 임하실 때에는 홀연히 하늘로 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여 각 사람위에 임하여
있다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행 2 : 1-4 ).
또 죽은 두 증인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 부활 승천할 것이다 (계 11 : 11 )
이상의 기운, 생기, 숨,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입기운이다.
이 입기운 곧 콧김으로 홍해를 갈랐으며 (출 15 : 8, 14 : 21-22, 삼하 22 : 16, 욥 4 : 9 , 시 18 : 6, 사 30 : 33, )
그의 입의 말로 죽이시고 (호 6 : 5 ),
말세 에는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시며 입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이실 것이다 (사 11 : 4 ),
가증한 미운 물건이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배도하는 자를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죽일 것이며 (살후 2 : 8 ),
대환난 후의 짐승들 곧 무신론 국가 이면서 세계를 지배하는 자들을 흰말 탄 자의 입에서 나오는 이한 검으로
칠 것이다 (계 19 : 15, 21 ),
그는 그 입에 좌우에 좌으에 날선 검이 있으며 (계 1 : 16 ),
그 검으로 회개 하지 않은 자들과 싸울 것이다 (계 2 : 16 ).
이상은 하나님의 입은 중심한 말씀들인 바 그 중심은 진리의 말씀이며 (히 4 : 12, 엡 6 : 17 )
그 진리의 말씀은 모든 능력의 근원이 됨을 말한다.
생기를 일으키시는 일도 역시 하나님의 생기로 이루어지며 (겔 37 : 5-10 ),
인류에게 생명과 호흡도 친히 하나님께서 주신다 (행 17 : 25 )
성자의 입은 심히 아름다우니 세상에 계실 때 그가 입을 여시면 진리가 쏟아져 나왔다 (마 5 : 2, 눅 4 : 22, 시 78 : 1-2 )
그 입에 궤사가 없으시고 (벧전 2 : 22 ),
욕하지 아니 하시며 (벧전 2 : 23 ),
어린양 같이 입을 열지 않으시고 (행 8 : 32, 사 53 : 7-8 ) 묵묵히 잡혀 죽으셨다.
성 도의 입에 대한 말씀이 있다.
신랑되신 예수께서 성도들에게 입맞추기를 원하신다고 하였고 (아 1 : 2 ),
또 그가 성도들에게 "네 입술은 홍색실 같고 네 입은 어여쁘고" (아 4 : 3 ) 라고 하였다.
또한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아 4 : 11 )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 (아 7 : 9 ) 하였다.
이상은 성도들의 입을 진리로 묘사하는 말씀들이다.
성도들의 입에는 입맞추고 싶은 사랑이 있고 젖과 같이 생명을 살찌게 하는 말씀이 있으며
역시 꿀같이 단 생명의 말씀과 포도주에 취함같이 생명이 취하여 기쁘게 되는 은혜의 말씀이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수 1 : 8 ) 하셨으며,
베드로 사도는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라" (벧전 4 : 11 ) 고 하였다.
우리 입에서 단물과 쓴물을 함께 내어서는 않된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것은 마땅치 않다 (약 3 : 10-11 )
만일 우리 입이 깨끗지 못하다면 회개 하여 용서함을 얻고 성령의 불로 깨끗함을 얻도록 힘써 기도 하여야 할 것이다.
옛날 이사야 선지자도 자기의 부정한 입술을 통회 하였다. 그때 숫불로 깨끗함을 얻었다 (사 6 : 1-7 ).
잠 언 기자는 입에 대하여 말하기를 "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잠 8 : 6-8 ),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 (잠 10 : 11 ),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잠 10 : 13 ),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 10 : 19 ),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 (잠 10 : 21 )
"의인의 입은 지혜를 내어도 패역한 혀는 베임을 당할 것이니라" (잠 10 : 31 ),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악인의 입은 패역을 말하느니라" (잠 10 : 32 ),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어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잠 12 : 6 ),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 (잠 13 : 2 ),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잠 13 : 3 ),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느니라" (잠 14 : 3 ),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잠 15 : 2 ),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지식을 전파하여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정함이 없느니라" (잠 15 : 7 ),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 입이 그릇하지 아니하리라" (16 : 10 ),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 입술에 지식을 더하느니라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잠 16 : 23 ),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느니라" (잠 17 : 28 )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 (잠 18 : 4 ),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잠 18 : 20 ),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 (잠 20 : 15 )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 (잠 21 : 23 ),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잠 22 : 11 )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 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
네 입술에 있게 함이 아름다우니라" (잠 22 : 17-18 ),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23 : 16 ),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 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잠 24 : 13 ),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 (잠 24 : 26 ),
"너는 벙어리와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너는 입을 열어 공의로 재판하여 간곤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지니라" (잠 31 : 8-9 ),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잠 31 : 26 ) 라고 하였다.
이렇게 입에 대하여 많은 말을 하게 됨은 입의 말이 얼마나 중한가를 알기 때문이다.
전도서에서도 " 지혜자의 입의 말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은 자기를 삼키나니 그 입의 말의 시작은 우매요 끝은 광패니라
우매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신후사를 알게 할 자가 누구이냐" (전 10 : 10-14 ) 라고 하였다.
바울은 성도들의 찬미는 하나님께 드리는 입술의 열매라고 하였으니 (히 13 : 15 ),
성도들의 입은 그들 속에 하나님 곧 그리스도의 영이 계서 주장 하시기 때문이다 (롬 8 : 9 ).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마 12 : 34-35 ) 하시어
입으로 나오는 선과 악의 말이 속에서 나온다고 하셨다.
이단자 및 무지한 자들의 입에 관하여도 성경은 침묵하지 않는다.
그 속에 성령이 없고 육에 속한 자 또는 사탄이 그 속에 주장하는 자들의 입은 실로 두려운 것이다.
사탄 곧 마귀는 욕심을 가지고 살인하며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어 육에 속한 자들 속에서 역사한다.
그 러므로 저들은 속 그대로 입을 통하여 말하게 되는 것이다.
다윗은 시편에서
"저희 입에 신실함이 없고 저희 심중이 심히 악하며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저희 혀로는 아첨하나이다" (시 5 : 9 ),
"그 입에는 저주와 궤휼과 포학이 충만하며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시 10 : 7 ),
"저 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시 12 : 2 ),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히 의인을 치는 거짓 입술로 벙어리 되게 하소서" (시 31 : 18 )
"그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워도 그 마음은 전쟁이요 그 말은 기름보다 유하여도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 (시 55 : 21 )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 혀에서 내 생명을 건지소서" (시 120 : 2 ),
" 뱀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셀라)" (시 140 : 3 ) 라고 하였다.
야 고보 선생은 입의 무기인 혀는 불인데 지옥불에서 난다고 하여 (약 3 : 6 ) 혀 밑에 지옥이 있음을 말하였다.
바울도 저희 목구명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 (롬 3 : 13-14 )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옛날 거짓말하는 영이 시드기야를 중심한 4 백명의 거짓 선지자들의 입으로 틀린 예언을 하게 한 일이 있었다 (왕상 22 : 23 ).
말세에도 "개구리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계 16 : 13-14 ).
하여 사탄의 3 영의 일체가 입과 말로 역사할 것을 보였다.
영계와 육계 모두 입, 혀, 말 이 세가지로 역사가 이루어짐을 보인다
솔로문의 잠언에 나타난 잘못된 입에 관한 기사는 다음과 같다.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5 : 3-4 ),
"궤휼과 사곡이 있으며" (4 : 24 ),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 6 : 2 ),
"음녀의 입맞춤의 위력" (7 : 13 ) 과 "꾀이는 입술" (7 : 21 )
"악인의 입술은 독을 머금었고" (10 : 6, 10 ),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며" (10 : 14 ),
"거짓 입술과 패역한 혀는 베일 것이며" (10 : 31-32 ),
"사특한 자의 입은 이웃을 망하게 하고" (11 : 9 ),
"악한 자의 입은 무너지게 한다" (11 : 11 ).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그물에 걸리며" (12 : 13 ),
"여호와께 미움 받는 거짓 입술: (12 : 22 ) 과 입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고" (13 : 3 ),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느니라" (14 : 3 ),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14 : 7 ),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 (14 : 23 ),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15 : 2 ),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하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 (15 : 14 ),
"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 입술에 지식을 더하느니라" (16 : 23 ),
"눈을 감는 자는 패역한 일을 도모하며 입술을 닫는 자는 악한 일을 이루느니라" (16 : 30 ),
"악을 행하는 자는 궤사한 입술을 잘 듣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악한 혀에 귀를 기울이느니라" (17 : 4 ),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18 : 6 ),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18 : 7 ),
"성실히 행하는 가난한 자는 입술이 패려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19 : 1 ),
"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 (20 : 17 ),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20 : 19 )
"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 (22 : 14 )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 입술은 잔해를 말함이니라" (24 : 2 )
"저 는 자의 다리는 힘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 (26 : 7 ),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의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 (26 :9 ),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26 : 23 ),
"감정 있는 자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에는 궤휼을 품나니" (26 : 24 ),
"거짓말하는 자는 자기의 해한 자를 미워하고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키느니라" (26 : 28 ),
"타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말며 외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말지니라" (27 : 2 ),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27 : 6 )
"만일 네가 미련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였거나 혹 악한 일을 도모하였거든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 (30 : 32 ) 고 하였다.
이상은 그 속에 성령이 없고 육에 속한 자들의 입에 관한 말씀이니 사탄 곧 마귀와 육체가 연합하여 이루어진 일들이다 (요 8 : 44 )
이들은 욕하고 비방하고 악하다는 거짓말을 만들어 핌박한다 (마 5 : 10-12 ).
원망과 불만과 자랑의 말을 뒤썩어 토한다.
훼방과 기룡하는 입들이다
성도의 입과 이단자들의 입을 열거해 보았다.
구원 얻을 성도는 당장 그 입이 거룩하여지는 것일까 ?, 여기 또 하나의 문제점이 있다.
앞에서도 말했거니와 옛날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왕이 죽던해에 하늘의 이상을 보는 가운데 자기 입술의 부정한을 의식 하였다.
화 있을 자기의 부정한 입술에 대하여 회개할 때 스랍이 부젓가락으로 단에서 취한 핀 숫을 가지고 와서
입술에 대어 사죄함을 얻게 된바 있었다 (사 6 : 1-7 ).
우리가 과거에 다 죄인이요 특히 말에 많은 죄가 있을 것이다 마는, 하나님께 회개하여 용서함을 얻고
성령의 불세례와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성도의 반열에 이르게되면 우리 입술은 앞에 말한 성도의 입술과 같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는 그 입술에 거짓이 없고 (계 14 : 5 ),
주야로 그 말씀이 입에 있어 (수 1 : 8 ) 말할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게 될 것이다. (벧전 4 : 11 ).
정 통과 이단을 교파와 단체로 구별하기 보다는 그들의 입을 살펴 정확히 알아내야 한다.
5, 이를 위하여 아첨함
가 만히 들어온 자들은 이를 위하여 방법을 가리지 아니한다.
명리와 재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악용한다.
장자의 기업을 팟죽 한 그릇에 파는 에서이다.
말로는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영원의 이해 곧 천국과 지옥을 전하지만 실제는 현실의 썩을 일을 위하여 열중한다.
베드로는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벧후 2 : 3 ) 라고 하였고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벧후 2 : 13-14 ) 하였다.
본 서에서 유다는 "두려움 없이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12 ) 라고 하였고,
미가 선지자는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미 3 : 5 ) 라고 하였다.
두령들과 치리자들에게는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좋아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남비와 솥 가운데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미 3 : 2-3 )
하여 교계와 정계 지도자들을 책망하였다.
또한
"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 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미 3 : 11 )유혹한다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들을 양의 옷을 입은 이리라고 말씀하셨다.
겉으로는 양과 같이 유순한으로 아첨하나 그 속에는 사람의 피맛을 아는 이리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마 7 : 15 ).
또 그들이 모인 성전을 강도의 굴혈이라 하였으니 강도는 다른 이를 죽이고 이를 얻는 자이다.
중상과 모략과 거짓말로 다른 교역자의 명예를 추락시켜 매장하고 다른 사람의 이익을 빼앗는 자들을 강도라고 하심이다 (마 21 : 13 ). 그리고 장사하는 집을 만들었다고 책망하셨다 (요 2 : 16 ).
인간은 이를 얻어야 한다.
이를 얻지 못하면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라는 것의 가치와 성격과 얻는 방법과 용도 , 목적을 알아야 한다.
이는 영육간 다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 가치에 있어서 영원과 순간의 차이가 있고
그 질에 있어서 선과 악의 격차가 있으며 그것을 얻음에도 방법이 옳고 그름이 있다.
그리고 얻은 후에도 전자는 안심 되지만 후자는 문제가 따르기 마련이다.
예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 : 24 ) 하셨다.
두 이를 함께 가지지 못함을 가르쳐 주셨다. 이 두이 가운데 어느 값진 하나를 얻어야 할 것이다.
이것 때문에 모세는 애굽의 왕위와 재물을 버리고 하나님을 구하였고 (히 11 : 24-26 ),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이로운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겨 버렸으며 9빌 3 : 7-8 ),
참된 선지자들과 사도 및 성도들이 모두 그러하였다.
그 러나 잘못된 자들은 진리의 이 보다 정욕적인 육체의 이를 얻으려 하다가 모두 멸망 하였으니
롯의 아내와 (창 19 : 26, 눅 17 : 32 ),
아간과 (수 7 : 16-26 ) 과 발람과 (민 22 : 24, 31 : 8, 수 13 : 22 , 유 11, 벧후 2 : 15-16, 계 2 : 14 ),
사울왕과 (삼상 15 : 8-23 ), 게하시 (왕하 5 : 20-27 ), 가롯 유다와 (마 27 : 1-10, 행 1 : 18 )
아나니아와 그 아내 삽비라 (행 5 : 1-11 )와, 그 같은 자들이었다.
이들은 적은 이를 탐하다가 큰 이를 잃었을 뿐 아니라 생명까지 잃게 된 것이다.
명리를 따른 고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물질적인 이를 얻는 방법도 사실은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면 더 얻어진다 (마 6 : 23 ).
영혼이 장되면 범사가 잘되고 건강의 축복도 받는다 (요삼 2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이단자들은 이의 가치와 이를 얻는 방법에 눈이 어둡다.
다시 말하면 썩을 이익을 썩지 아니할 이익보다 더 값지게 보며 또한 그 썩을 이익을 얻는 방법은
아첨과 중상 모략과 싸움으로 일관한다.
그러므로 얻지 못하거니와 만일 그렇게 얻었다면 그것은 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밥상이 변하여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될 것이지만 목적이 의롭고 방법이 바르면
구하는 것을 다 얻을 것이며그 얻은 모든 것이 합동하여 유익함을 이룰 것이다 (시 69 : 22-23, 롬 8 : 28, 11 : 9 ).
성도들은 보다 더 나은 이를 얻으려는 자들이다.
그 방법은 아첨이나 중상 모략이 아니고 진리 안에서 성실히 행한다.
예수께서 씨를 뿌리는 비유 곧
추수할 때에 열매를 많이 맺어라는 말씀과 (마 13 : 1-32 ),
가루 서말 속에 누룩을 넣는 말씀과 (마 13 : 33 ),
고기 잡는 그물의 말씀 (마 13 : 47-50 ), 그리고
달란트를 맡긴 비유의 말씀 (마 25 : 14-30 ) 들은 모두 이를 얻어야 한다는 알씀이다.
만 일 이를 얻지 못할 때에는 찍어시고 9마 3 : 10, 눅 13 : 6-9 ),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겨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마 25 : 30 ).
이와같이 이를 얻고 얻지 못함은 살고 죽음을 좌우하는 중대한 일이다.
인 간은 손익의 가치를 명확히 분별하여야 하며 그 이익을 얻는 방법에 주의 하여야 한다.
음식을 생명보다 귀히 여기며 의복을 몸보다 소중히 여긴다면 이는 가치관의 착오로 이득이 아니라 멸망적 손실이다.
그리고 먼저 그 의를 구하지 않고 아무런 방법으로라도 이를 얻으려 한다면 이 또한 패망의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
우리는 이를 얻으려는 목적과 가치 비판과 선택 방법에 주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