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 떼는 그날!

마당쇠(senir) 2007-02-01 09:52

만일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지 못하고 언제까지 젖만 먹는다면 이 아이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음만 못하고 이런 아이를 낳은 부모는 큰 근심이 될 것입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젖 먹을 때는 젖을 먹고 젖을 뗄 때는 젖을 떼고 단단한 식물을 먹을 때는 단단한 식물을 먹고 성장하여 완전한 성인이 되어 부모의 유업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거듭났어도 성장함이 없다면 이는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할 것이며 또한 만일 끝내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고 만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 받지 못할 것입니다. 기록된바『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 하신 증거와 같은 것입니다.

아이는 태어나면 먼저 젖을 먹습니다. 젖을 먹을 때는 아직 어리므로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도 이와 같이 젖 먹는 어린 때는 육신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전 3:1) 라고 증거 하신 것입니다.

젖 먹는 어린 시절이 없이는 장성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곧『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 라는 증거와 같은 것입니다.

거듭났으나 어릴 때는 분별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3-14) 라고 권면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무엇이 어린아이가 먹는 젖이며 무엇이 장성한 자가 먹는 식물인지 알게 하십니다. “그리스도 도(말씀)의 초보”는 어린아이의 젖이고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는 장성한 자의 단단한 식물이라고 말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히 5:12-6:1-3) 라고 확실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이 어린아이의 젖인 그리스도 도(말씀)의 초보를 버리고 장성한 자의 식물인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인 완전한데로 나아가라고 하시나 이는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임을 성경은 또한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철없는 처녀가 신랑 사랑하는 신부만 알고 시부모 공경하는 며느리는 아직 모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마치『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 하신 증거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만일 처녀가 남편만 사랑한다면 이는 완전한 시집살이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도의 초보까지만 이른 사람은 아직 젖밖에는 모르는 철없는 어린 아이요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까지 이른 사람이라야 완전히 장성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 받을 사람입니다. 이는 신부가 되었으면 또한 온 집안을 다스리는 며느리가 되어야 마땅히 곡간 열쇠까지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랑을 사랑하지 않는 신부는 결코 시부모를 공경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랑을 참으로 사랑하는 신부라야 시부모도 참으로 공경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젖 먹고 충실해진 아이라야 젖을 떼고 단단한 식물을 먹이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젖을 먹는 고린도 교회에게『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전 3:2) 라고 증거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아들 이삭이 젖 먹는 동안에는 그의 형 계집종의 아들 이스마엘과의 다툼이 그치지 않았으나『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창 21:8) 하신 증거의 말씀 이후에는 기록된바『....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갈 4:30) 하신 증거의 말씀대로 이삭의 가정은 고요하고 평온해졌습니다.

이는 젖 뗀 이삭에게 다시는 이스마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곧『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시 131:2) 하신 증거와 같은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젖은 아무 때나 떼는 것이 아니고 아이가 자라야 떼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그 아이가 자라면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하나님의 종들이 젖 떼는 일을 내 안에서 하시게 될 것입니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